寧,平,旌 이야기

아우라지 별곡

浮石 2007. 7. 9. 11:46

삶을 뜨개질하며 돌과 벗한 옥산장 아주머니

 

 

[유성문의 길]아우라지 별곡

2007 03/13   뉴스메이커 715호


돌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돌이 되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면 해당화는 왜 피며
모춘삼월이 아니라면 두견새는 왜 울어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전옥매의 긴 장단으로 부르는 아라리 중에서


설움으로 나앉은 강가에서, 강물은 설움보다 더 구슬피 흘러갔다. 암캉에서 흘러온 물이거나 수캉에서 흘러온 물들, 아우라져 돌돌돌거리며 끝없이 흘러갔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모든 슬픔들 다 어디서 오며, 기어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옥매는 강가에 앉아 제 설움도 잊어버린 채 흘러가는 강물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그녀의 젖은 눈에 새 한 마리가 들어왔다. 매화나무 가지에 올라앉은 그 새는 서럽게도 원앙새 한 마리였다. 어쩌다 그 원앙은 홀로된 것일까. 짝을 잃은 원앙은 애타게 짝을 찾아 헤매다 끝내 세상을 뜨고 만다는데. 옥매는 무엇에 홀린 듯 그 새에게 다가갔다. 손에 닿을 듯이 가까이 가보았지만, 새는 날아가지 않았다. 그 새는 돌이었다. 하고많은 눈물들 강물이 되고, 그 강물 흘러 마침내 돌무늬로 아로새겨진 서글픈 새였다.

정선 아우라지에서 옥산장이라는 여관을 운영하던 전옥매 아주머니는 그렇게 처음 돌과 만났다. 때는 20여 년 전이었고, 그때만 해도 아우라지도, 더욱이 아우라지 곁의 초라한 여관 옥산장 쯤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눈먼 시어머니와 다리 저는 남편을 모시고 살아오면서 이미 갖은 신고를 겪어온 터였지만, 융자에 남의 빛으로 여관을 짓고 나서 겪은 마음고생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깊은 설움이 복받칠 때마다 강은 어김없이 그녀를 불러냈다. 그 강가에서 제 설움보다 더 많은 강물들과, 설움으로 숱하게 널린 돌까지 만나게 된 것이었다. 돌들은 서로 비슷비슷했지만, 설운 사연으로 모두 제각각이기도 했다. 동자승을 품고 있는 놈, 젊은 연인들이 나누는 열정의 키스, 12간지하며 1에서 0까지, 무슨 설움으로 제 가슴을 뚫어버린 놈이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돌은 이야기가 되었고, 이야기는 돌이 되었다.

우연히 찾아든 행운

한낱 시골여관에 불과했던 옥산장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1994년에 발간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덕분이었다. 유홍준 교수는 ‘아우라지강의 회상’ 편에서 이렇게 적었다.

여량에는 몇 채의 여관이 있다. 그 중에서 나는 두 번 다 옥산장여관에 묵어갔다. 옥산장 주인아주머니는 여느 여관집 주인과 다르다. 깨끗하고 곱상한 얼굴에 맑은 웃음은 장모님 사랑 같은 따뜻한 온정이 흠씬 배어 있는데, 손님을 맞는 말씨에는 고마움의 뜻을 얹어 무엇 하나 귀찮다는 티가 없다. … 그 분의 인생드라마는 그저 얘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 단편 단편에는 상징과 알레고리가 스며 있어서 넋을 잃고 듣고 있는 청중들은 그 모두를 자기 인생에 비추어보면서 가슴 찔리고 부끄러워하고 용기를 갖게 되며 뉘우치게도 되는 문학성과 도덕성을 고루 갖추고 있다.

이 땅에 문화유산답사라는 열풍을 불러일으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위세는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고즈넉한 절집을 벌집 쑤시듯 뒤집어도 놓았고, 애문 절집 개 몇 마리를 사람들로 몸살을 앓게도 했다. 아우라지만 하여도 강가에 세워진 처녀상 하나를 ‘마치 뽕짝 가요를 이탈리아 가곡풍으로 부르는 격’이라 하여 멀쩡한 동상을 허물고 새로 세우게도 했다. 다행히도 옥산장은 장사로 먹고사는 집이었던지라 몰려드는 손님들로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그것은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었고, 어쩌면 평범한 시골아낙으로 늙어갈 수도 있던 한 여자에게 삶의 활기를 불어넣어준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단순한 행운이랴. 아라리가락보다 더 구슬픈 그녀의 삶이 강물처럼 아우라져 그렇게 끝도 없이 흘러간 것일 뿐.

지금 그녀는 여관 한켠에 ‘돌과 이야기’라는 수석전시장을 짓고 멀리서 찾아든 나그네들에게 돌에 얽힌 사연을 들려준다. 뿐만 아니라 정선아리랑 보유자들을 불러 길손들에게 아라리가락을 들려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직접 아라리가락을 익혀 긴 장단으로 부르기까지 한다. 굽이굽이 넘어가는 그녀의 노래는, 그 진한 사연으로 어떤 명창의 노래보다 절절하다.

물들은 아우라지에서 아우라진다

아우라지는 정선군 북면 여량리를 싸고도는 강이다. ‘여량(餘糧)’은 예로부터 토질이 비옥해 식량이 남아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 예나 제나 그네들의 삶은 그리 풍족하지 못했다. 물은 가슴을 에이고 다녔고, 산은 턱도 없이 적막했다. 오죽하면 정선아리랑의 발원조차 세상에 낙망한 은둔거사들의 노래였다고 할까. ‘물은 산을 넘지 못하니’ 깊고 깊은 산을 휘돌고 에돌아온 물들은 아우라지에서 아우라진다. 평창의 발왕산에서 발원하여 노추산을 두루 휘돌아 구절리를 거쳐 흘러내리는 송천과, 태백산 연맥인 중봉산에서 시작되어 임계를 거쳐 정선 쪽으로 굽이쳐 흐르는 골지천이 한데 어우러져 아우라지강을 만들었다. 그것은 또 굽이굽이 노래를 만들어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먹구름이 막 모여든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면 해당화는 왜 피며
모춘삼월이 아니라면 두견새는 왜 울어
아침저녁 돌아가는 구름은 산끝에서 자는데
예와 이제 흐르는 물은 돌부리에서만 운다


그 물의 한 굽이에 한 여인의 삶이 있고 옥산장이 있다. 그 여각에서 묵고 간 유숙의 삶들이 있다. 그녀는 최근 그 모든 아우러지는 것들을 모아 ‘아우라지 별곡’(지식더미 간)을 펴냈다. 그녀의 책 속에는 무수한 돌들이 굴러다닌다. 눈멀고 중풍에 걸린 시어머니와, 바람에 도박까지 허랑의 한세월을 건너온 남정네와, 실패와 좌절과, 고통과 이별의 돌들이 굴러다닌다. 그 돌들은 굴러다니며 소리치고, 굴러다니며 울음 울고, 굴러다니다 마침내 잦아든다. 그 한 많은 세월이 우리가 살아온 길이며, 어쩔 수 없이 또 우리가 어디론가 흘러가야 할 길이다.

<유성문 객원기자 rotack@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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