寧,平,旌 이야기

동강할멈 강물이너무 더럽지 않아?

浮石 2007. 5. 13. 05:18
 강기희(gihi307) 기자 -->
▲ 암벽에 뿌리내린 동강할미꽃, 동강을 굽어본다.
ⓒ 강기희
설레는 마음으로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남쪽에서 들려오는 꽃 소식도 부럽지 않았다. 하루 한 번은 동강으로 갔다. 동강할미꽃이 피었는지 확인하는 일로 며칠을 보냈다. 날은 궂었다. 궂은 날에도 동강할미꽃은 하나씩 싹을 틔웠다.

동강할미꽃이 꽃대를 밀어올리기 시작하더니 며칠 전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임 마중 나가는 심정으로 동강변으로 나갔다. 꽃이 피어나길 기다리는 사람은 나 말고도 많았다. 부끄러운 듯 피어나는 동강할미꽃은 미세한 바람에도 자주 흔들렸다.

꽃이 피어날 무렵 비가 연일 내렸다. 장대비를 동반한 폭우도 지나갔다. 비로 인해 동강엔 때아닌 장마가 졌다. 강한 폭우가 내리는 시간 가리왕산엔 폭설이 내렸다. 흰눈을 덮고 있는 산과 붉은 물의 홍수. 요즘 동강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생강나무 핀 동강변에도 봄은 오고

간밤엔 바람이 강했다. 바람이 휩쓸고 간 자리엔 몸을 눕힌 풀들이 힘겹게 굽은 어깨를 편다. 오늘은 먼 산이 가려질 정도로 하늘이 뿌옇다. 처음엔 안개라고 생각했다. 안개낀 산자락이 멋스럽다며 카메라를 들고 나서는데 느낌이 다르다. 시야를 흐리게 하는 것은 안개가 아니라 황사먼지다.

중무장을 하고 강원도 정선 귤암리의 동강변에 섰다. 봄꽃이 지고 있다는 남쪽과 달리 동강변은 이제 봄을 맞았다. 산자락에 핀 생강나무가 이 고장에도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알린다. 어젠 여주에 터를 잡은 홍일선 시인과 통화를 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정선도 진달래 졌지?"
"예? 여긴 아직 피지도 않았는걸요."
"그래? 부러운걸."
"부럽긴요, 여기선 꽃동네가 더 부럽습니다."

벚꽃 축제가 한창이라는 남쪽 소식은 먼나라 이야기 같다. 요즘 정선에서 볼 수 있는 꽃은 산수유와 생강나무꽃밖에 없다. 개나리나 진달래, 목련은 저들이 피어날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생강나무꽃은 산수유꽃보다 색이 짙다. 정선지역에서는 동백(동박)이라 부른다. 동백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 머리에 바르던 옛 시절이 있었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 '정선아라리' 가사 중에서


동백나무 열매는 가을에 빨갛게 익는다. 그것이 다시 까맣게 익을 무렵 따서는 기름을 짠다. 그렇게 짠 기름이 동백기름이다. 그 사연을 올해 일흔다섯이 된 어머니께 물었다.

"옛날에 동박낭구 열매를 따 기름을 짜서는 머리에 바르곤 했지. 바를 게 있었어야지. 그것도 멋쟁이들만 했지 아무나 못했어. 가격도 비쌌어."

어머니도 동백기름을 몇 번 발라보지 못했단다. 귀한 동백열매를 따러 간다는 핑계는 정선아라리 가사에도 나온다. 아우라지 처녀가 강 건너 마을인 싸리골에 있는 총각을 만나러 가기 위해 강변에 나서지만 장마로 인해 뱃사공은 배를 띄우지 않았다.

처녀는 싸리골에 있는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며 뱃사공에게 하소연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싸리골에 있는 총각이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시시장철 님 그리워 못 살겠다고 노래를 받아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선의 봄소식을 알려주는 진객 '동강할미꽃'

▲ 홀로 피어난 동강할미꽃, 그 자태가 고고하다.
ⓒ 강기희
▲ 비를 흠뻑 맞은 동강할미꽃.
ⓒ 강기희
불어난 강물을 사이에 두고 만나지 못하는 남녀의 사랑이 애틋하다. 오늘 같은 날도 아우라지 뱃사공은 배를 띄우지 못한다. 동백나무가 노랗게 꽃을 피웠지만 배를 건네 줄 뱃사공은 위험하다며 고개를 저을 뿐이다.

정선의 봄 소식을 알려주는 진객은 '동강할미꽃'이다. 동강할미꽃은 정선의 동강변에만 피는 세계 유일종이다.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 풀인 동강할미꽃은 여느 할미꽃과는 다르다.

보통의 할미꽃은 고개를 숙이지만 동강할미꽃은 꽃대를 들어 유유히 흐르는 동강을 굽어본다. 그 자태가 곱기도 하여 꽃이 피어나는 3월말 경부터는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는 동강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경이다. 그런 동강의 암벽에 봄을 가득 품은 동강할미꽃이 꽃을 활짝 피운다. 속도를 조금이라도 높이면 동강할미꽃은 시야에서 멀어진다.

차를 세우고 '뼝때'라고 부르는 암벽을 찬찬히 살피면 비로소 동강할미꽃을 만날 수 있다. 동강할미꽃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암벽을 타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모습은 바람에 흔들리는 동강할미꽃처럼 위태롭다.

동강할미꽃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해마다 찾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동강할미꽃을 보존하는 일에도 앞장선다. 동강할미꽃을 아끼는 이들이라 무리하게 암벽을 타거나 꽃을 훼손하지 않는다. 그윽하게 바라보는 일이 더 즐겁다는 사람들이다.

동강할미꽃이 피워내는 꽃 빛깔도 여러가지다. 꽃은 연분홍빛에서부터 청보라, 흰색, 자주빛까지 다양하게 핀다. 뼝때에 고고하게 핀 동강할미꽃은 힘겨운 삶을 살아내는 정선 사람들의 심성을 닮아있다.

동강에 안긴 꽃

물소리 바람소리 사모하여
가파른 암벽에
매달려
가슴앓이 하소연
동강자락에 풀어 놓고
정선을 품은 꽃

구비구비 자주 옷고름
침전되어 아라리요
숨다가 숨다가 지쳐
한적한 뼝대 위
나래접고 앉아
외줄타기 하면서도
하늘마저 품은 꽃

- 송은애 시 '동강할미꽃' 전문


동강할미꽃의 시선은 굽이치는 동강으로 향한다. 강한 바람에도 어느 한순간 몸을 눕히는 법 없는 동강할미꽃의 곧은 기개는 꺾이지 않는 민중의 힘이다. 척박한 암벽을 움켜쥔 그 힘은 이 땅을 지켜낸 사람들의 억센 손갈퀴다.

동강할미꽃의 노란 꽃술은 우리네 지친 삶을 위로해주는 청량제다. 폭우가 내린 다음날 동강을 찾았을 땐 동강할미꽃은 보란 듯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오염된 동강의 물이 거칠게 쓸려가는 모습이 시원하기도 했을 것이다.

보존해야 할 동강할미꽃 "그저 바라보기만 하세요!"

▲ 정선 동강변에만 자생하는 동강할미꽃.
ⓒ 강기희
▲ 할아버지 수염을 한 동강고랭이. 정선 동강변에 자라며 동강할미꽃과 함께 있다.
ⓒ 강기희
비 온 다음날 동강의 풍경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산자락을 휘감은 안개는 동강할미꽃과 더불어 진귀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 무렵 카메라를 든 이들의 몸이 바빠진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물 흐르는 소리보다 빠르다.

귀한 동강할미꽃이다 보니 훼손도 심각하다. 곱고 귀한 꽃을 혼자만 즐기고자 몰래 채취하는 일도 잦다. 정선읍 귤암리 사람들은 줄어드는 동강할미꽃을 보존하기 위해 '동강할미꽃 보존회'를 만들었다.

"동강할미꽃은 정선 동강변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입니다. 사람들의 욕심이 동강할미꽃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자연은 그 자리에 있을 때만 가치가 있으니 제발 뿌리만큼은 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집에 가져간다 해서 살아나지 않거든요."

동강할미꽃 지킴이인 서덕웅씨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이미 동강할미꽃이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사진작가들이 좋은 사진을 담겠다고 암벽을 기어오르는 것도 문제가 있단다. 암벽을 기어오르다보면 자연이 훼손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지난해부터 동강할미꽃의 훼손과 불법 채취를 막기 위해 조를 편성해 순찰을 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욕심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자연을 지키려는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아름답다.

요즘 동강변엔 동강할미꽃 축제가 한창이다. 동강할미꽃과 지역을 알리고자 시작한 축제지만 걱정도 많다. 이러다간 동강할미꽃이 남아나지 않겠다는 위기의식도 있다. 급기야 정선농업기술센터에서 종자 보급에 나섰다.

사람들의 입소문은 희귀종일수록 전파 속도가 빠르다. 그 속도가 빠른 만큼 동강할미꽃의 개체수가 줄어드는 속도도 빠르다. 자연은 자연 속에 있을 때 아름답다는 걸 모르는 이들이 많다. 인간의 욕심이 지나치다.

▲ 동강할미꽃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야생화 동호회 회원.
ⓒ 강기희

▲ 동강할미꽃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사람들.
ⓒ 강기희
동강변에 동강할미꽃과 함께 피어나는 게 또 있다. 동강변에 자생하는 돌단풍이다. 정선지역에선 바위에 피는 나리라 하여 '바우나리'라고 부른다. 돌단풍은 한때 사람들의 무분별한 채취로 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동강고랭이와 동강할미꽃의 사랑이야기가 흐르는 곳 '동강'

동강의 또 다른 풍경은 동강고랭이라고 부르는 할아버지 수염이다. 동강할미꽃과 나란히 있는 동강고랭이는 동강변에서만 볼 수 있는 풀이다. 봄이면 작은 꽃을 피우는 동강고랭이는 피어나는 꽃 모양에 따라 암수를 구별한다.

동강고랭이는 처음 동강황색초라고 학계에 보고되었지만 얼마 전 동강고랭이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금 정선의 동강변에 가면 할아버지 수염을 가진 동강고랭이와 동강할미꽃을 함께 볼 수 있다.

선비처럼 긴 수염을 가진 동강고랭이와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동강할미꽃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엿듣는 재미는 동강 여행의 백미다. 하지만 요즘 동강고랭이와 동강할미꽃의 마음은 편치 않다.

동강고랭이와 동강할미꽃은 욕심 많은 사람들의 억센 손길과 발걸음이 무섭고, 거칠게 들이대는 카메라가 두렵다고 한다. 예의 없는 젊은이들이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지만 물고기조차 살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된 동강을 보면 숨이 턱까지 막힌다.

"동강할멈, 강물이 너무 더럽지 않아?"
"그러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요즘엔 만날 흙탕물이네요."
"쉬리나 어름치와 아침 인사하며 하루를 시작했는데 이젠 그마저 못해."
"동강 상류에 댐이 있는데 그 댐에서 똥물이 내려온다네요."
"그래서 강이 저렇게 죽었군. 어쩐지 비오리도 원앙도 보이지 않더만. 강이 죽어가니 다들 떠나는 게야."
"동강할아범, 우리도 언젠가 강물처럼 죽어가겠지요."
"그렇겠지, 인간들이 하는 짓이란 게 늘 그랬으니까."


동강고랭이와 동강할미꽃의 한숨이 깊어진다. 그 시간에도 카메라 셔터 소리는 멈추질 않고, 동강할미꽃을 구할 수 없냐고 떼를 쓰는 사람의 목소리만이 귓전을 친다. 그 소리에 동강할미꽃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 동강고랭이는 그런 동강할미꽃을 긴 수염으로 품어준다.

▲ 둘이라서 외롭지 않은 동강할미꽃.
ⓒ 강기희
▲ 함초롬 피어난 동강할미꽃. 곱다.
ⓒ 강기희
2007-04-01 14:28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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