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아내

浮石 2010. 4. 5. 20:29

 

 

 

사월의 아내

                                조 영 환


아내가 봄옷을 정리하다가, 문득
옷장 서랍에서 눈에 익은 꽃무늬 원피스를 꺼낸다
스무 해 전, 그녀와 처음 만났던
사월 어느날 벚나무 그늘에서
머뭇거리며 사랑을 고백하던 날
그녀가 입었던 꽃무늬 원피스
해마다 사월이면 벚나무가 어김없이
내 기억 속에서 홀연히 꺼내 입는 화사한 그 옷
그러나 어느새 폐경에 접어든
아내는 물끄러미 거울 앞에서
가뭇없이 젊은 날이 빠져나간 꽃무늬 원피스를
이리저리 몸에 대어보는 것이다
무심한척 곁눈질하는 내 눈에는
그녀의 적막한 등이 불현듯
꽃나무처럼 환해지는 것이나
까맣게 잊었던 기억 속 향기를 맡는 가슴은
저릿저릿 아릴 것이다
그러나 아내여, 사월은 가고 벚꽃은 진다고
눈물 글썽이지는 말아다오
낡아 헤지는 것은 다만 꽃무늬 원피스뿐,
사랑을 고백한 날부터
내 생은 이미 수만의 꽃잎이
낱낱이 향기를 켜든 벚나무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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