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운주사 석탑(천탑千塔)

浮石 2011. 11. 9. 00:00

 

구층석탑(보물 제796호)

운주사 골짜기의 남쪽 첫 입구에 위치한 석탑으로 거대한 암반 위에 건립되고 탑신부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가득히 조각되었으며, 특히 옥개석이 경쾌하여 전체적으로 화사하고 세련된 작풍을 보이고 있다..

 

구층석탑(보물 제796호)

중장터로부터 들어오자면 운주사 골짜기의 남쪽 입구에 위치한 최초의 석탑으로 크기가 가장 크고 높으며 거대한 암반위에 건립되어 있는 석탑이다.
별도의 지대석이 없이 암반의 형태에 따라 3~4단의 각형괴임을 암반 자체의 상면에 각출하고 1층탑신의 면석을 받고 있다. 6매의 판석으로 짜여진 각면의 양쪽 귀퉁이에 우주가 모각되고 면석 안쪽에는 보조우주가 뚜렷하게 면석에 모각되어 있다. 면석 재의 구성은 남북면은 2석으로 동서면은 3매석으로 구성하였다.

1층 옥개석의 아랫면에는 옥개받침이 없고 여러겹의 선문이 중앙에서 45도 각도로 옥개석 단부를 향해 기하학적으로 조각되었다. 옥개석 네 귀퉁이의 전각 부분에는 반전되어 있으며 모서리에는 추녀부분을 두툼히 조각하였다. 낙수면은 평평하여 평박한 조형임을 느끼게 하고 단부의 절단면은 수직으로 자르지 않고 사절하였다.
옥개석의 두께는 얇으나 전각부분이나 처마의 절단 부분이 두꺼워 단부에서는 두툼한 감을 주며, 특히 옥개석 하부의 사선문양과 추녀문양 때문에 반전이 심한 듯 보인다. 이 옥개석 하부의 사선문양은 1층 7선, 2층 7선, 3층 5선, 4층 4선, 5층 5선, 6층 4선, 7층 4선, 8층 4선, 9층 3선이다. 특히 각층 옥개석은 일반적인 석탑에서와 같이 방형이나 7층 옥개석은 완전한 방형이 아니고 전각 부분을 죽여 중앙이 튀어 나오게 하였다.

옥개석은 각층이 1석씩으로 조성되었으나 탑신석은 초층은 6매석 2,3,4층은 4매의 판석으로 짜여있다. 짜임방법은 판석에 우주와 면석을 모각하여 양쪽에 세우고 그사이에 면석을 끼워넣어 'H'자 모양으로 구성하였다. 따라서 2,3,4층의 탑신석에는 좌우 양면에 우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각층 탑신석의 각면에는 똑같은 문양을 조각했는데 이중의 마름모꼴안에 4엽화문을 장식한 것이다. 옥개석의 정상에는 원주형의 석재와 보륜 등의 상륜부재 일부가 놓여있다.

이 석탑은 거대한 암반위에 건립되고 탑신부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가득히 조각되었으며 옥개석이 경쾌하여 전체적으로 보아 운주사 석탑군 중 수의급으로 여겨진다. 특히 옥개석 아랫면의 사선문양이나 탑신의 활짝 핀 꽃 문양은 이곳에서만 볼수 있는 희귀한 예이다. 원래 이 탑은 지방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가 1984년 보물로 승격되었다.

 

칠층석탑

칠층석탑 1 과  칠층석탑 2.. 멀리 보이는건 구층 석탑이다..

운주사지 일원

 

운주사의 불적은 많은 탑과 불상이 한 지역에 빽빽이 들어서 있다는 점에서 경주의 남산과 자주 비교된다. 그렇지만 운주사의 불상과 탑은 남산처럼 계곡에 시기가 다른 별개의 불사로 이루어진 유적이 아니어서 분명히 구별된다.

1백여분의 돌부처와 21기의 석탑이 야외 전시장을 방불케하는데 이는 우리나라 불교 미술사에서 그 유래를 찾기 힘든 희한하고 불가사의한 유적이다.

굳이 "천불천탑을 세우려다 새벽닭이 울어 공사를 중단했다"는  도선의 설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운주사는 미완의 도량으로서 영원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5층석탑

 

명당탑

명당탑

명당탑

4층석탑

4층석탑

원구형 석탑

떡시루를 중첩시켜 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하여 일반적인 상식을 초월한 특이한 형태이나 낯설지 않고 조형미를 갖춘 석탑이다..

 

 

‘다탑봉의 천불천탑’으로 알려진 운주사의 불교유적은 화순군 도암면의 해발 1백여 미터의 야트막한 야산의 남북 방향으로 뻗은 두 산등성이와 계곡사이에 위치한다. 양쪽으로 벌어진 낮은 구릉의 산등성이 사이, 계곡 여기저기에 불상과 탑이 서 있다.
운주사는 후기라는 왕조 말기적 분위기 속에서 풍수지리사상에 입각한 행주론(行舟論) 곧 한반도를 배 형국으로 보고 운세가 일본으로 떠내려가는 것을 막고자 하는 풍수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운주사의 창건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많다. 먼저 도선국사와 관련된 것으로 통일신라 말의 선승 도선이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쌓았다는 불가사의 한 전설과 미륵의 혁명사상을 믿는 천민들과 노비들이 들어와 천불천탑과 사찰을 만들어 미륵공동체 사회를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더욱이 운주사의 성격에서조차 불교사원이라기 보다는 도교사원이었다는 주장, 밀교사원이었다는 주장, 민간 신앙의 기복처라는 이야기까지도 있다.
또한 운주사에는 천탑이 있었다고 하는 데, 과연 운주사에 천 기의 석탑이 있었고 이것들이 일시에 건립된 것일까?
千은 불교에서는 만수(滿數)로서 무량 무수(無量 無數)의 여래를 나타난다. 우리나라에 천불신앙은 중국의 남북조시대 이래 당대까지 각지에 천불이 조성되고 유지되었다. 우리나라에 천불 신앙이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 후기였으며 고구려에 처음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남 의령에서 출토된 고구려 불상의 명문에 천불상의 조성 사실이 보여 주목된다. 실제 천불상의 조성 예는 경덕왕대부터 문헌에 등장하고 운주사와 가까운 지역인 구례 화엄사와 해남 대둔사의 천불전 등에서 찿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천탑의 예는 없다. 이는 천이 ‘더 이상 채울 수 없이 가득한’ 개념을 가진 불교의 상징적 의미로만 사용되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운주사의 탑의 건립과 사찰의 창건이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인데도 불구하고 워낙 신비스러운 사찰이라 석탑의 건립 배경이나 연대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전해가 제기되어 왔다.
양식적으로 보면 운주사의 석탑은 대부분 고려 중기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판단된다. 곧 운주사 석탑들에서 나타나는 다양성과 무정제성으로 보아 건립 연대를 낮추어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들이 보여준 정형적인 감각은 사라지고 약간은 무계획적이고 거친 듯 한 무작위의 기법이 운주사 석탑들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주사의 석탑에 대해 조잡하다거나 불심이 부족하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하며 어떤 특별한 목적과 의지를 가지고 이러한 불사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운주사에는 1941년도의 조사 집계로는 석탑이 22기가 있었는데, 1981년도의 조사에는 18기로 줄어들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석탑형식을 갖춘 것이 18기, 석주형으로 1층탑신만 남아있어 석탑으로 추정되어지는 것이 3기로 모두 21기의 석탑이 현존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 운주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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