寧,平,旌 이야기

단종국장, 아픔은 기쁨으로

浮石 2012. 1. 25. 21:53

 

장례의식, 정점을 넘어서니 희망의 길이 기다려

안녕하세요!
영월 장릉의 옛이야기 제7편으로,

단종역사관에 전시되고 있는 단종국장 사진기록에 대하여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단종국장이라고 하면 2007년도에 영월군민의 힘으로 지내드린 단종임금님의 장례의식을 말함인데요.
장례라는 의식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하는, 역사의 정점을 넘어서서 묵은 아픔을 한꺼번에 털어내는 계기가 되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하였던 단종국장의 근원은,

1967년에 처음 진행했던 제1회 단종제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영월군개발위원회 어른들이 어느 자리에서 말씀 나누기를 “임금님 제향을 문중에서 올리고 있으니. 이제는 군민의 이름으로 모두가 참여하여 제향을 올렸으면 좋겠다” 라는데 뜻이 모아져 단종제향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즉, 조선국의 임금을 영월에 군민이 모시고 있으니 영월 사람들의 힘으로 제향을 올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단종제는, 단종제 위원회를 중심으로 역사의 이론을 정립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승화되어 46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단종제로 시작한 제향이 단종문화제로 이어지는 세월의 과정을 거치면서

임금님에 대한 장례를 지내드린 기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에 대한 장례의식이 없었다?
일반인이 사망을 하여도 3일이거나 늦어도 5일 이내에는 꼭 지내드리게 되는 장례인데 임금님에 대한 장례가 없었다는 점을 찾아낸 영월의 어른들은, 왕가의 문중을 비롯하여 영월군청과 수없이 많은 협의회의를 진행하면서 기록의 역사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결과는, 우리들이 장례를 지내드리자는데 뜻이 모아졌습니다.

 

 


하여, 2006년도에 중앙정부에 공식적으로 건의하게 되는데요, “우리들이 모시고 있는 단종임금님에 대하여 장례를 지내 드리고자 하니 ‘대한민국’ 국호 사용을 허락해 주십시오” 했더니, 정부에서는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개 고을(군)에서 하는 말이, ‘임금의 장례를 지내드리지 못한 것이 틀림없으니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장례를 지내드리고자 한다’  했으니 말입니다.
그랬더니요~ “그것을 어떻게 찾아냈느냐”고 매우 놀라워하면서 흔쾌히 동의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조선국에서 해결하지 못한 임금의 장례를 대한민국 시대에서 대한민국 이름으로 단종국장을 지내드리게 되었습니다.

 

 


2007년 4월 장중하게 진행된 장례에서는, 1천명의 군민이 조선시대 백성으로 변하여 모두 다 하얀 상 옷을 입고, 3천여 군민과 3만여 관광객이 뒤를 따르는 국장 의식이 진행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장례를 지내드리고 보니까 영월이라는 지명의 참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寧)월(越)이라는 한문 풀이는 편안할 령(寧)에 넘을 월(越) 자 인데요. 바로 임금님의 장례의식을 통하여 550여 년 동안, 이심에서 저심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민심의 아픔을 한꺼번에 확~! 털어내 버리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사실상 이제야 말씀을 드릴 수 있는데요,
그 이전까지는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낼 길이 없어 어느 누구를 만나든 수심이 가득한 얼굴이었습니다. 이제는 모두를 기쁨으로 맞이하면서 밝고 환한 얼굴로 모든 분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오늘날 수없이 많은 분들이 영월 역사의 현장을 오시고 계십니다.
그럴 때마다 지극정성으로 손님을 맞이하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게 모시고자 애쓰는 영월의 인정은,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 하더라도 얼지 않는 민심이 되고 있습니다.


오십시오!
복과 덕을 마음껏 담아가실,준비된 영월로 오십시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