寧,平,旌 이야기

외씨버선길 ③ 옛 풍류 흐르는 영월군 김삿갓면 12.5km

浮石 2011. 9. 1. 00:00

외씨버선길 ③ 옛 풍류 흐르는 영월군 김삿갓면 12.5km

청송~영양~봉화~영월로 이어지는 '외씨버선길'의 영월 쪽 개통 구간은 12.5㎞. 영월군 김삿갓면 지역이다. 아스팔트 찻길로 시작되지만, 아기자기한 물길과 까마득한 절벽을 낀 산길 거쳐 아늑한 숲길로 마무리된다. 흥미로운 얘깃거리·볼거리들이 남한강 지류인 곡동천·옥동천 물길 따라 함께 흐른다.

'난고 김삿갓 문학관'이 출발지다. 대표적인 우리 국토 여행가 중 하나인 난고 김병연(1807~1863)이 기다린다. 길 떠나고 방황하는 일, 마시고 읊고 사랑하는 일, 썩은 세상 질타하고 바닥 인생 감싸안는 일로 오로지했던 막무가내의 여행자, 김삿갓(김립)의 호방한 삶과 문학을 '문학관' 안팎에서 만날 수 있다.

문학관 부근 옛 하동면(현 김삿갓면) 와석리 어둔이골에 젊은 김병연이 살았었다. 홍경래의 난(1811) 때 선천부사였던 조부 김익순이 항복한 죄로 폐족 처분돼 집안이 망했다.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 10살 무렵 어머니·형과 영월로 이주했다고 한다. 결혼하고 방랑을 떠나기 전까지 살던 집터(어둔이골)와, 화순에서 이장한 묘(노루목)가 남아 있다.

문학관에서 오래 머물게 된다. 평생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인간미 넘치는 풍자시를 써갈겼던 그의 자유분방한 삶이 새삼 가슴을 친다. 김병연이 남긴 시가 1000편에 이른다고 하나, 400여편만이 전해온다. 기발한 시도 있고, 아름답고 쓸쓸한 시도 있다. 김삿갓이 어느 서당에서 푸대접을 받고 썼다는 '욕설모서당'(辱說某書堂)을 입에 담고 우물거리며 문학관을 나섰다. '서당내조지(書堂乃早知)요, 방중개존물(房中皆尊物)이라, 생도제미십(生徒諸未十)이요, 선생내불알(先生來不謁)이라.'(서당을 일찍이 알고 찾아보니, 방 안엔 모두 귀한 분들뿐이네, 학생은 채 열 명이 안 되는데, 선생은 나와 보지도 않네)

구멍가게에도 식당에도 다리 난간에도 죽장 짚고 삿갓 쓴 '삿갓 어른' 형상이 즐비하다. 곡동천(김삿갓계곡) 물소리 들으며 걷는 내리막길은 아스팔트 찻길이지만, 절묘한 풍자시·파격시의 여운이 따라와 지루하지 않다.

와석2리 물가에 선 200년 넘은 굴참나무와 이끼 덮인 성황각을 보고, 계단길 올라 출렁다리길 지나 조선민화박물관을 만난다. 해학적인 표정의 호랑이 등 그림과 전통 가구들이 볼만하다. 오석환 관장이 25년간 수집해온 민화 4000점 중 100여점씩을 골라 해마다 바꿔 전시한다. 은근히 인기 있는 곳이 2층 '춘화방'이다.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한·중·일 성생활 그림(춘화)들이다. 19살 미만 출입금지.

민화박물관 19금 춘화방 은근히 인기 누려

박물관을 내려오면, 후끈 달아오른 얼굴을 곡동천의 거센 물소리가 씻어준다. 물길 건너 마을길·밭길 따라 걷는다. 개망초·도라지·달맞이꽃 흐드러진 묵은밭에 햇살이 따가운데 잠자리들만 난리가 났다. 소란한 물놀이 인파를 뒤로하고,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간다. 본격적인 숲길 여행의 시점이다. 절벽 위로 이어진 오솔길이 아기자기하다. 신작로가 뚫리기 전, 와석리 주민들이 이용하던 산길을 일부 손질한 것이다. 옛날 시집가던 각시가 절벽에서 가마가 굴러 물에 빠져 죽었다는 각시소도 보인다.

찻길 만나 삿갓교 건너 좌회전, 이번엔 물길을 왼쪽에 두고 숲길로 든다. 난간까지 만들어 붙인 멋진 통나무다리 지나 좁고 아늑하고 푹신하고 향기로운 오솔길이 이어진다. 습기찬 숲 안엔 푸른 이끼를 두른 고목들이 즐비하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산길로 올라야 한다. 왼쪽 길은 사유지여서 막혀 있다. 물소리 잦아들고 새소리가 도드라지는 가파른 산길 올라 한굽이 돌아내려가면, 길 오른편에 그릇이 든, 나무상자 형태의 작은 사당을 만난다. 산신이나 개인적으로 모시는 신에게 제를 올리는 장소로 여겨진다.

첩첩이 쌓인 푸른 산봉들 바라보며 마을길 내려와 다시 물길을 만난다. 농가들은 대부분 펜션·민박집으로 바뀌었다. 다리 건너 묵산 미술박물관에 들른다. 세계어린이미술관·고미술전시관·현대미술관·체험장을 갖춘 숲속 미술관이다. 임상빈 관장이 사재를 털어 수집한 조선시대 회화 등을 전시한 고미술전시관이 볼만하다. 전국 이발소 벽에 걸려 있던 그림 30여점을 전시한 '이발소 그림전'도 열리고 있다. 커피·전통차·주스·컵라면·아이스크림을 갖춘 '무인 셀프 찻집'도 있다.

아기장수와 용마 전설 깃든 커다란 든돌
돌아나와 찻길 옆에서 검은 이끼 덮인 커다란 바위, 든돌(든바위)을 만난다. 아기장수와 용마 이야기가 전해오는 바위다. 마을에 태어난 아기장수가 거대한 돌을 들어 작은 돌들 위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와석1리 박순용 이장은 "도로 확장하느라 든돌 주위가 다 메워졌다"며 "옛날엔 돌이 공중에 떠 있어서, 긴 실로 바위 밑을 훑으면 걸리지 않고 통과시킬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아기장수가 죽은 뒤 용마가 나타나 울부짖다 죽었는데, 용마를 묻은 무덤이 와석1리 들모랭이 논 가운데 있었다. 주민들은 무덤에 해마다 용마제를 지냈는데, 72년 수해 때 유실됐다고 한다.

와석1교에서 다시 물길 옆 산길로 들면, 옛 농수로를 따라 낸 오솔길을 한동안 걸어 88번 도로로 나서게 된다. 곡동천 물길이 옥동천에 합류하는 지역이다. 삼거리 김삿갓상회·식당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와석1리 마을로 들어선다. 와석리(1~5리)는 일제강점기 행정지명 개편 때 와인리와 거석리(든돌)를 합쳐 부른 이름이다. 이른바 '양백지간'(소백과 태백 사이 지역)으로, 산이 깊은데다 물길이 가로막고 길이 험해, 난을 피할 수 있는 10승지의 하나로 꼽혔다고 한다.

와석1리 연꽃테마단지 옆 산밑에 메기못이 있다. 못에 사는 "눈이 양푼만한" 메기가 못가에 매어놓은 송아지를 물고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못이다.

옥동천 너른 물길을 오른쪽에 두고 다시 울창한 숲길로 들어간다. 매미소리·물소리가 자욱한 아늑한 숲길이다. 이 길은 겨울철 건너편에서 바라봐도 멋지다고 한다. 김순주 외씨버선길 탐사팀장은 "한겨울 강 건너 고개에서 이쪽을 바라보면 눈에 덮여 굽이치는 오솔길 모습이 그림 같다"고 말했다.

참나무 우거진 숲속에서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옥동천 물길의 보를 따라 건너 옥동리로 질러가는 '지르내' 길이고, 왼쪽 산길은 옥동천 물이 불어 막혔을 때 에돌아가는 가랭이봉 산길이다. 옥동천 건너편 고개가 고지기재(와석재)다. 옛 밀동(예밀리)의 세곡 창고를 지키는 고지기들이 넘어 다니던 고개라고 한다. 와석리 주민들은 1980년 이 고개에 도로가 뚫리기 전까지, 건너편 가랭이봉 쪽 옛길을 걸어 면소재지인 옥동리를 오갔다.

직선 오르막길을 숨차게 올라 와석1리 전망을 즐기고,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산길을 걷는다. 오솔길엔 벌써 파릇파릇한 다래 열매가 떨어져 깔렸다. 길은 좁고 거칠지만, 표지판이 설치돼 있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길 오른쪽에서 거센 물소리가 줄곧 따라붙는데, 까마득한 절벽이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탁 트인 지르내 전망대와 밀골(예밀리) 전망대에 서서 강줄기를 굽어본 뒤 완만한 내리막길을 한동안 걸으면 예밀교 앞으로 나선다. 조선시대 감옥 터였던 옥동초등학교와 옥동중학교 지나면 외씨버선길 도착점인 옥동면사무소다. 옥동리엔 한일강제합병 전후에 맹활약했던 김상태 항일의병장을 모신 사당이 있다.

영월=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