常識

"죽음은 혼자 떠나는 것… 삶은 못 갖고 가는 것들에 너무 집착"

浮石 2012. 7. 30. 12:31

 

      [조선일보] 김여환 호스피스 의사는“임종실의 환자를 보면서 저기에 누워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한다”고 말했다. / 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살려고 하다가 죽어가는지 모른다."

―죽음을 쉽게 수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눠질 수 있나?

"삶이 고달프고 힘들었다는 사람, 가령 노숙자나 장애인들은 굉장히 편안하게 간다. 자식을 앞세운 사람도 그렇다. 삶에 대한 의욕과 집착이 덜한 사람이 죽음을 잘 수용하는지 모른다."

―무엇을 보고 '죽음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판단하나?

"링거를 정상적으로 주입해도 소변이 적게 나올 때다. 이 시점부터는 더 이상 링거가 도움이 안 된다. 나중에 가래가 많아지고 몸만 퉁퉁 붓게 할 뿐이다. 임종 단계에 가면 호흡이 가빠지고 피검사 수치도 나빠진다. "

―임종 단계는 얼마나 지속되나?

"요즘은 약물에 의해 죽어감이 길어진다. 남자에 비해 여자가 확실히 길다. 일주일에서 3주쯤 지속된다. 그러면 자녀가 '우리 엄마가 한(恨)이 많아서 눈을 못 감나요?' 하고 물어올 때가 있다. 나는 '한 번에 빛이 탁 꺼지는
별똥별이 있고 서서히 꺼지는 별똥별도 있다'고 얘기해준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내 인생을 괜히 헛된 데 다 보냈구나' '회사 일에 미쳐서 정작 소중한 가정을 소홀히 했구나' 하며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후회하나?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하는 말을 별로 듣지 못한 것 같다. 내가 물어보면 '난 할 것을 다 했다'고 말한다. 오히려 가족이 죽어가는 사람에게 평소에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지난 3월 내 어머니도 여기서 한 달간 지낸 뒤 돌아가셨다."

―당신은 어떤 후회가 있었나?

"엄마는 돈 아낀다고 잘 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팬티 한 장도 못 갖고 가는 게 죽음인데. 그런 엄마를 생각하니 불쌍했다."

―사람은 죽음에 직면하면 선해지는가, 아니면 더 이기적이 되는가?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 통증으로 인격 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아준다면 대부분 살아왔던 모습으로 죽는다."

―죽음 직전에 가족에게 주로 어떤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나?

"병상에서 유언을 하는 것은 가상의 드라마다. 그런 일은 없다. 혀를 움직이는 것은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임종 단계에 온 환자들은 혀를 거의 움직일 수가 없다."

―숨 넘어가기 직전의 유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내 경력이 아직 짧아서 그런지 이 병동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죽어가는 환자는 말할 수는 없어도 들리기는 다 들린다. 귀는 끝까지 살아 있다. 그래서 평소에 잘 듣는 음악을 들려주거나 좋은 말을 해준다. 자녀가 '엄마 때문에 너무 행복했다'는 얘기를 하면 환자의 표정이 달라진다."

―그러면 유언은 언제 하는가?

"어느 정도 살아 있을 때 한다. 하지만 유언이란 자식들이 안 따라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암환자는 각막 기증을 할 수는 있다. 그런 유언을 하고 간 환자들이 있었지만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었다. 살아 있는 가족이 반대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신이 '웰 다잉'을 하려면 남은 가족을 더 배려할 필요가 있다."

―죽어가는 환자가 남은 가족까지 챙겨야 하는가?

"어느 날 병간호를 잘 하던 딸이 오지 않더라. 암에 걸린 아버지가 유산 분배를 하면서 아들에게 더 줬기 때문이다.
마음이 상한 것이다. 죽어가는 엄마를 놔두고 자식들이 유산 얼마 때문에 여기 복도에서 머리 뜯고 싸워 경찰까지 부른 적 있었다. 내가 낳은 자식들이 서로 다투는 것은 어쩌면 환자가 뿌려놓은 결과일 수 있다."

―배우자가 말기 암 환자인 경우는 어떤가?

"요즘은 남편도 간호를 잘 한다. 부인이 암에 걸리면 '내가 술을 많이 마셔서, 바람을 피워서 그런가' 하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다. 누렇게 퉁퉁 부은 부인을 간호하면서 '우리 와이프 예쁘지 않아요' 하며 내게 말한다. 그 얼굴에 입맞추는 남편도 봤다."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평균 입원기간은?

"대부분 두세 달 만에 죽는다."

―심장과 뇌, 호흡 중에서 어떤 상태를 보고 죽음을 선언하나?

"환자가 마지막 숨을 내뿜은 뒤 심장이 멎는다. 딸 결혼식 날 아침에 숨진 환자가 있었다. 그분은 결혼식을 꼭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숨을 멈추기 직전에 눈물 한 방울이 맺히더라."

―이는 자연 분비현상인가, 감정에 의한 것인가?

"그건 모르겠다. 죽는 순간 그런 환자들이 없었다. 분비현상이 멈추기 때문이다. 나는 딸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생각했다."

―사람이 죽으면 몸무게가 생전보다 21g이 가벼워진다고 한다. 그걸 빠져나간 '영혼'의 무게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과학적으로는 '탈수 현상'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건 난 몰랐다. 환자가 침대에 누워 있어 달아볼 수도 없다."

―영혼이 있다고 보나?

"죽음의 그 뒤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죽으면 내 딸의 마음에 살아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 엄마도 내 마음 여기에 살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