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냄새/오탁번

浮石 2013. 9. 21. 07:00

 

 

 

 

 

밥냄새 1

 

                        오 탁 번

 

하루 걸러 어머니는 나를 업고

이웃 진외가 집으로 갔다

지나다가 그냥 들른 것처럼

어머니는 금세 도로 나오려고 했다

대문을 들어설 때부터 풍겨오는

맛있는 밥냄새를 맡고

내가 어머니의 등에서 울며 보채면

장지문을 열고 진외당숙모가 말했다

- 언놈이 밥 먹이고 가요

그제야 나는 울음을 뚝 그쳤다

밥소라에서 퍼주는 따끈따끈한 밥을

내가 하동지동 먹는 걸 보고

진외당숙모가 나에게 말했다

- 밥때 되면 만날 온나

 

아, 나는 이날 이때까지

이렇게 고운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태어나서 젖을 못 먹고

밥조차 굶주리는 나의 유년은

진외가 집에서 풍겨오는 밥냄새를 맡으며

겨우 숨을 이어갔다

 

 

오탁번 시집 <손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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