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임형신

浮石 2014. 4. 9. 08:19

 

 

의자

         

                    임형신

 

 

배론성지, 천주학장이들의 숯가마굴을

찾아가다가

입구에 있는 의자에 등을 기댄다

이곳은 언젠가 어머니가 다녀갔던 곳

목백일홍 사이로 꽃잎에 얼비친

어머니 웃고 있다

천천히 빛을 따라 도는

순례의 길

잔못 듬성듬성 솟구친 의자에

어머니 앉아있다

내색도 없이 편안하게

앉는 곳마다 불쑥불쑥 머리 내민

못대가리 그 중의 하나였다, 나는

 

 

어머니가 앉았다 간 발밑

눈길 마주했던

키 작은 술패랭이꽃

꽃의 입에 귀 대고

흘려버린 말들 다시 듣다 돌아오는

환한 꽃그늘 속

 

 

임형신 시집 『서강에 다녀오다』(황금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