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철(김금철)시인

浮石 2016. 3. 18. 05:00



첫 시집 '핏줄'(도서출판 다인아트)을 출간한 고철(55) 시인을 월미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 2층에서 만났다. 내가 기억하는 고철 시인은 빡빡머리에, 피리를 멋지게 불었던, 술집 주인에게 넉살좋게 공짜 안주를 청하는, 후배들에게 꼬박꼬박 누구누구'형'이라 호명하는 마음 좋은 사람이었다.


고철 시인의 본명은 김금철이다. 태어난 곳 철원과 자신의 이름 석 자가 모두 '쇠'를 의미해 필명을 고철이라 칭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는 쇠와 인연이 많다. 한때 철강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고철'이라는 이름은 거칠게 살아온 자신의 삶과 거기서 배어나온 외모와 잘 어울린다.
그는 95년 '한겨레문학' 봄 호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84년부터 시를 써왔으므로 시 창작 경력은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 그가 이제야 첫 시집을 슬그머니 세상에 꺼내놓았다.

 "나는/죽어도,/핏/줄/을/놓지 않았다/"(시 '줄타기')라는 짧고 애절한 시로 시작하는 시집 '핏줄'은 시인의 내면에 감춰져 있는 비극적 고독을 확인하는 피맺힌 전주곡이자 불우한 삶을 관통하는 탄환 같은 것이다.


그는 고아 출신이다. 아니 정확히 버려진 아이였다. 4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는 자신은 "강원도 철원의 넉넉했던 집에서 자란 아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6∼7세 무렵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춘천에 있는 고아원에 버려졌다. 그는 지금도 왜 어머니가 자식을 버렸는지 의문 속에서 산다. 어머니와 아버지, 누나들의 모습도 설핏 떠오른다. 차라리 그때 기억이 감감했더라면 핏줄의 인연을 망각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버림받았다는 '징그러운 기억'은 수십 년간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고 한다. 시집 '핏줄'은 이렇게 태어났다.
"내게 시집은 부모를 찾는 전단지"라며 건네준 시집 표지에는 고아원에 입소할 때 찍은 얼굴 사진과 고아원에서 발급한 원아증명서가 희미하게 인쇄돼 있다. 책표지만 놓고 보면 꼭 부모를 찾는 전단지인 셈이다. 그런데 시집 표지 속 고철 시인의 어릴 적 사진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의 눈과 미간에는 두려움과 슬픔의 빛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때를 회상하는 그의 얼굴엔 지금도 몸서리 쳐지는 공포와 슬픔이 서늘히 묻어난다.

"고아원에 끌려가며 죄인처럼 벽에 기대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생판 모르는 곳으로 끌려간 터라 그때 난 완전히 얼어있었죠."
거리에 버려졌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96년 거리시낭송협회를 만들고 자비를 들여 매달 거리에서 시낭송을 했다. 거리시낭송은 핏줄을 찾기 위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들 중에 하나였다.


지금 그는 밧줄에 몸을 맡긴 채 고층건물 외벽에 칠을 하는 페인트공이다. 먹고 살기 위해 목숨을 한줄기 밧줄에 걸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절친한 동료이자 선배가 일을 하다가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자신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밧줄을 더욱 움켜쥔다. 그러나 밧줄보다 놓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죽어도 놓을 수 없는 질긴 핏줄이다. 때문에 시집 '핏줄'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어들로 가득한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자식을 버린 어머니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까.
"그리움을 넘어 이젠 애증 단계로 접어든 게 아닐까요? 하지만 요즘엔 제삿밥도 못 차려 드리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울컥 치밀어 오릅니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며 진행된 인터뷰 짬짬이 그는 창밖 거리와 바다 쪽에 시선을 뒀다. 그는 한때 바다가 좋아 월미도를 자주 찾았다. 거리시낭송협회도 이곳에서 출범했다. 실직을 할 때마다 월미도에 와서 낚시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바다가 싫다고 한다. "눈물로 이루어진 것이 바다"이기 때문이란다.
고철 시인은 얼마 전 기자가 소설집을 낸 것을 상기하며 "책이 많이 나가냐"고 물었다. "출판사에 아직 절반이 쌓여 있다"고 말했다. 서로 웃었다. 담배를 태우며, 웃으며, 목구멍으로 울컥 넘어오는 무언가를 억지로 삼키며 기자는 "핏줄을 찾는 시집이 방방곡곡으로 팔려 나가 어머니 손에까지 쥐어지고 이젠 그 징그러운 기억을 잊으라"고 되뇌였다.

/조혁신기자 blog.itimes.co.kr/mr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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