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
보물 제3호. 전체 높이 4.9m, 비신 너비 1.3m. 1471년(성종 2) 건립되었다. 원각사는 탑골공원(구 파고다공원) 자리에 있던 절로서, 조선시대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조계종 본사로 세웠는데, 조계종이 없어지자 관서(官署)로 사용하였다. 세조가 간경도감에서 『원각경(圓覺經)』을 번역하고, 회암사(檜巖寺) 사리탑에서 사리를 나누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곳에 다시 원각사를 짓고 마당에 13층사리탑을 세웠다.
비문은 당대 명신들이 짓고 썼는데, 앞면의 비문은 김수온(金守溫)·성임(成任), 뒷면의 추기(追記)는 서거정(徐居正)·정난종(鄭蘭宗)이 각각 짓고 썼다. 대리석제의 비는 마멸이 심하여 전혀 알아볼 수 없는데, 다행히 비문의 내용이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실려 있다.
반구형의 이수는 비신과 한 돌로 보주를 받든 형상의 쌍룡을 조각하였다. 이수 아래쪽에는 ‘大圓覺寺之碑(대원각사지비)’라는 전액을 강희맹(姜希孟)의 글씨로 새겼다. 귀부는 둔중한 몸체로 일반적인 육각형 귀갑문 대신에 사다리꼴 평행 세선을 새겼으며 연잎 모양의 비좌(碑座)와 물고기 비늘을 조각한 꼬리나 다리가 특이하다. 전체적으로 당비(唐碑)의 형식을 따른 복고적인 석비로, 조각이 번잡하고 사실적인 표현에서 미숙하나 조선시대의 독특한 조각 형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
조선시대의 비. 1471년(성종 2) 건립. 전체 높이 4.9m. 보물 제3호. 반구형의 이수는 비신과 한 돌로 보주를 받든 형상의 쌍룡을 조각하였고,이수 아래쪽에는 강희맹이 글씨를 새겼다.
이 탑은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로, 높이는 약 12m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탑 구석구석에 표현된 화려한 조각이 대리석의 회백색과 잘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탑을 받쳐주는 기단은 3단으로 되어있고,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다. 기단의 각 층 옆면에는 여러가지 장식이 화사하게 조각되었는데 용, 사자, 연꽃무늬 등이 표현되었다. 탑신부는 10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을 하고 있고 4층부터는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각 층마다 목조건축을 모방하여 지붕, 공포(목조건축에서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위에 얹는 부재), 기둥 등을 세부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전체적인 형태나 세부구조 등이 고려시대의 경천사지 10층석탑과 매우 비슷하여 더욱 주의를 끌고 있다.
탑의 윗부분에 남아있는 기록으로 세조 13년(1467)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형태가 특이하고 표현장식이 풍부하여 훌륭한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