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 법천사지(原州 法泉寺址)

浮石 2017. 2. 19. 06:00


원주 법천사지(사적 제466호)는 부론면 법천리에 위치한 폐사지다. 절이 융성할 당시에는 마을 전체가 사찰일 정도로 사세가 컸고, 마을 이름도 법천리다. 고려시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다가 임진왜란 때 불탄 이후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커다란 느티나무 고목이 보이면 그 일대가 모두 절터다. 아직까지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라 전체적으로 어수선하지만,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가 서 있는 낮은 산자락 주변은 석축부터 깔끔하게 복원되었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호)는 법천사지에 온전히 남아 있는 유일한 석물이다. 법천사에서 출가해 고려시대 왕사까지 오른 지광국사의 업적을 새긴 비석으로, 부도비는 크게 귀부와 비신, 이수로 나뉜다. 귀부는 거북 모양 비석받침, 이수는 비석의 지붕돌이라 생각하면 쉽다. 우리나라의 부도비 가운데 업적이 새겨진 비신이 파괴되어 귀부에 이수만 얹힌 것이 많은데, 법천사지의 부도비는 온전한 형태로 남아 반갑기 그지없다.






이 탑비는 지광국사(智光國師)의 행적을 기록되어 있으며, 지광국사의 사리를 모신 현묘탑(국보 101호)은 우리나라 부도 중에서 걸작으로 꼽히는 것으로, 원래 이 절에 있었으나, 지금은 경복궁에 옮겨져 있다. 비문은 11세기 석비를 대표하는 걸작품으로서 비석의 재질은 연한 청색의 점판암이다. 글은 고려 초의 문장가인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安民厚)가 구양순체로 썼다. 비의 앞면은 지광국사가 수도한 내력을 적고 있다.
지광국사 해린(海鱗, 984~1070)의 속성이 원씨(元氏)로 원주의 토착세력 출신이었다. 법고사 관웅대사밑에서 수학하고 관웅대사를 따라 개경에 들어가 준광에게 출가하였으며 16세때 용흥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1004년(목종 7) 21세에 승과에 합격한 이후 법상종 승려로서 대덕(大德)이 되었다. 고려 초 현종은 현황사를 창건하고 대대적으로 법상종 교단을 지원하였는데, 혜린은 71세인 1054년(문종 8) 개경에 있는 현화사 주지를 맡아 경전을 판각하였다. 그는 삼중대사․승통․왕사의 칭호를 받았고, 74세때인 1057년(문종 11) 봉은사에서 국사(國師)로 추대되었으며, 1070년(고려 문종 24) 이 절에서 돌아가셨다. 뒷면에는 1370여 명에 이르는 국사의 제자 이름 및 인원수를 적었다. 비석을 세운 연대는 1085년(고려 선종 2)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광국사탑비는 신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라 불릴 정도로 정교하고 화려한 문양이 새겨졌다. 귀부는 원래 거북 모양이지만, 상상력이 넘치는 선조들이 멋진 용으로 새겨놓았다. 이 귀부는 옆에서 보고, 앞에서도 봐야 한다. 옆에서 보면 의젓하고 위엄이 가득한 용의 모습이지만, 앞에서 보면 잇몸을 드러내며 히죽히죽 웃는 용의 모습이다. 귀부의 등에 새겨진 왕(王)자는 국사의 자격으로 왕에 버금가는 예우를 받은 지광국사의 면모를 알 수 있다.


비신은 특이하게 오석으로 만들었다. 오석은 까마귀 오(烏)자를 쓰는 까만 돌로, 벼루를 만드는 데 주로 사용한다. 비신에는 다양한 문양과 글귀가 화려하다. 비신의 가장자리는 당초문을 새겨 틀을 만들고, 지광국사의 업적을 빼곡히 새겼다. 비신의 측면에는 커다란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희롱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발톱이 날카로운 발을 뻗어 여의주를 취하려는 용의 모습을 아래에서 보노라면 용이 승천하는 듯하다.

인근에 지광국사 현묘탑이 있었으나 이탑은 현재 경복궁내에 있다. 기단 사방에 각형 초석이 배열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탑비는 보호전각 속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신은 귀부위에 방형 비좌를 조성하고 홈을 판 다음 비신 하단에 장부를 내여 맞추어 세운 석비이다.  비석의 윗 부분인 이수(螭首)는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단 중심부는 탑의 상륜부와 같이  하늘을 나는 천녀(天女)․해․달 등과 함께 불교의 이상 세계인 수미산(須彌山)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복발위에 연꽃이 조각된 세 개의 보륜이 올려져 있다. 이수(螭首) 하단부는 탑의 탑신석을 전사한 것으로 건물 추녀가 하늘로 활짝 벌려 있는 모습처럼 네 귀퉁이와 그 사이에 꽃을 조각하여 날아갈 듯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중간 중간 보이는 두 개의 연꽃잎과 구름 속의 용(龍)을 환상적인 조각은 암막새 기와를 불교적 맥락으로 조형화 한 창의적인 도상으로 평가된다. 기단부가 2단의 장대석으로 되어 있는 점은 외벌대 장대석으로 기단이 조선된 영월 흥녕사 대사탑비와 다른 점이다.  

비신의 화려함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가장 상단부인 제액(비석의 명칭을 새긴 부분)이다. 제액 좌우에는 사각의 틀에 봉황을 새겼고, 윗부분에는 나뭇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무 아래 토끼와 삼족오를 새기고, 위아래로 구름과 산, 날아다니는 봉황의 모습까지 세세하게 담았다. 오로지 정과 망치로 만든 석공의 솜씨다. 요즘 사람들은 따라오지 못할 신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광국사탑비 주변에는 재미있는 석물도 많다. 석탑의 부재와 광배(부처의 성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등 뒤로 표현한 원광), 주춧돌, 석등받침 등이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하트를 뒤집어놓은 문양도 있고, 도넛처럼 맛있게 생긴 문양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굳이 알지 않아도 하나하나 정성 들여 새긴 석공들의 솜씨를 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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