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흥 읍내리 벽화고분
사적 제313호. 평면 직사각형의 돌방무덤[石室墓]이고, 크기는 동서 3.35m, 남북 2.14m이다. 1985년 7월 10일 대구대학교 교수 이명식(李明植)이 발견하였다. 사각형으로 다듬은 돌로 6∼7단씩 쌓은 고분의 벽면에 회칠을 하고, 그 위에 채색으로 북벽에는 연꽃과 구름무늬, 서벽에는 뱀을 손에 쥔 나체 인물화, 동벽에는 나체의 역사상(力士像)과 서조(瑞鳥) 등이 그려져 있는데, 다른 벽화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는 고구려풍을 띠고 있다. 또 고분의 연대를 밝힌 결정적 고증자료가 된 2행 9자의 검은 붓글씨로 써 놓은 명문(銘文:己未中墓像 人名口口)이 고분 널길[羡道]의 벽면에서 발견되어, 599년(신라 진평왕 21) 기미년(己未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보다 앞서 1971년 이 고분에서 2km 떨어진 순흥면(順興面) 태장리(台庄里)에서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발굴단이 발견한 최초의 신라벽화고분 순흥어숙묘(順興於宿墓)의 석비(石扉)에 “乙卯年於宿知述干”이라는 명문이 있었고, 을묘(乙卯)라는 명문에 의해 595년(진평왕 17)의 고분임이 확인된 바 있어, 이 벽화고분도 진평왕 21년 기미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학계에서는 그 내용과 문화사적 성격으로 보아 지금까지 남한에서 발견된 삼국시대 벽화 중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의 벽화고분은 주로 고구려시대에 널리 유행했던 묘제로서 이제까지 61기가 발굴 조사되었으며, 그 중 57기가 평양 ·안악(安嶽) 및 중국의 지안[集安:輯安]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남한에서는 백제고분 2기(公州 宋山里 6호분 ·扶餘 陵山里 벽화고분) ·가야고분 1기(高靈 古衙洞 벽화고분) ·신라고분 1기(順興於宿墓) 등 모두 4기가 발굴되었을 뿐이므로 순흥벽화고분은 다섯 번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