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

화서 이항로선생 생가

浮石 2006. 7. 17. 10:47

 

 

 

 

 

 

 

 

 

 

‘삼포리’를 중심으로 화서에 대한 재조명

조선 주리철학 3대 학자 중 한명으로 침체되어가는 성리학에 활기를 불어넣은 조선 말 저명한 존왕양이의 대의를 주장한 화서 이항로(華西 李恒老 1792(정조 16년)~1868(고종 5년)선생은 성리학의 대학자입니다.

이항로선생의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이술(而述), 호는 화서(華西)로 경기도 양평 벽계출생입니다.

화서 이항로는 강렬한 서양문물 배척정신과 초기의병에 이르기까지의 이른바 위정척사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으로 우리에게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으며, 무엇보다 당시 당면한 특수성에 비추어 직언자로 우국과 존왕양이의 춘추대의를 강조함으로써 그의 문하에서는 위정척사와 창의호국의 중심적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즉 한말사상계와 의병운동을 주도한 최익현,김평묵,유중교,유인석 등의 문인들을 배출시켜 화서의 보수적인 화이사상을 민족자주적인 실천적 지도이념으로 승화시켰을 뿐만아니라 실천운동으로 항일 의병투쟁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한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화서 선생은 순조 30년인 1830년 금강산에 갔다 오다 홍천 삼포리의 지세(地勢)에 마음이 끌린후 1852년 61세에 가족들과 함께 홍천으로 이주하여 `임천오씨태극설(臨川吳氏太極說)', `재수주자대전차'(再脩朱子大全集箚)'를 저술하며 문인 유중교로 하여금 `송원화동사합편강목(宋元華東史合編綱目)'을 짓게 했습니다.
하지만 69세가 되던 해 다시 고향인 벽계로 귀향하며 홍천과의 아쉬운 인연을 남겼습니다.

춘천출신의 유인석의병장과 이소응의병장에게 정신적 세계관을 심어준 화서학파의 우두머리 이항로 선생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홍천 삼포리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겠으며, 유인석, 이소응 등 강원도가 낳은 인물들에 대한 가치를 함께 재조명하여야 하겠습니다.

홍천문화원장 김상옥

'서울,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종면 이석리  (0) 2006.07.24
남종면 면명(面名)의 유래  (0) 2006.07.18
광주시 남종면 검천리(능곡마을)  (0) 2006.07.16
남종면 귀여리  (0) 2006.07.14
평 舍那寺 삼층석탑  (0) 2006.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