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

남종면 면명(面名)의 유래

浮石 2006. 7. 18. 10:36

 

 

 

 

1. 수청1리 (큰청탄)

2. 수청2리 (작은청탄)

3. 수청2리 (작은청탄)

 

남종면 면명(面名)의 유래

남종면은 朝鮮 英祖 년(1747)까지는 양근군(楊根郡)에 속하였는데, 처음 면명(面名)을 지을 때 양근군의 남쪽 끝에 있다하여 남종(南終)이라고 하였다. 여지도서(地理誌)를 보면 양근군(楊根郡)에는 남시(南始), 남중(南中) 그리고 남종(南終) 등의 면명(面名)이 있었다.
朝鮮 高宗代에 양근군과 지평군(砥平郡)을 합쳐 양평군(楊平郡)으로 함에 따라, 양평군 남종면이 되었다가, 1914년(일제 강점기) 行政區域 개편에 의하여 廣州郡으로 편입 되었다.

남종면의 위치와 지형 지세

남종면은 廣州市의 동북쪽에 위치한 고을로, 市廳으로부터 남종면사무소가 소재한 분원리(分院里)까지 약 12km 거리에 있다. 면적은 48.59km2 이고, 동쪽으로는 양평군 강하면(江下面)과 접하고, 북쪽으로는 팔당호(八堂湖)를 건너 양평군 양서면, 서쪽으로는 중부면과 河南市, 그리고 남쪽으로는 퇴촌면과 접해있다.
해협산(海峽山:531m), 정암산(正岩山:403m)등이 솟아있어서 촌락(村落)은 남한강(南漢江)유역을 끼고 형성되어 있다. 1972년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우천리(牛川里) 14.9km2가 수몰되었으며 분원리도 많이 수몰되었다. 지금의 남종면은 팔당호를 중심으로 전 지역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며, 또한 팔당상수원보호구역 1권역으로 되어있어 개발이 철저히 제한되어있다.
퇴촌면과 연해 있는 308번 地方道가 남종면사무소 소재지인 분원리를 경유하여 귀여리 수청리 검천리를 거쳐, 양평군 강하면을 통하여 양평, 여주방면으로 갈수 있는 도로가 팔당호 강변을 따라 건설되어 있어 외부와 연결된 유일한 길이다. 삼성리와 이석리는 퇴촌면 도마리에서 팔당댐 방면으로 향하는 42번 국도가 마을 앞을 지나 팔당댐을 넘어 양평-홍천간 6번 국도와 만나게 되어있다.

남종면의 연혁


남종면은 양평군에 속하였다가 廣州郡으로 편입되었는데, 朝鮮朝 말 행정구역 一覽에는 대수청리(大水靑里), 소수청리(小水靑里), 검단리(檢丹里), 사천리(沙川里), 귀여리(歸歟里), 제청리(祭廳里), 분원리(分院里), 우천리(牛川
里)등 8개리로 이루어졌었다. 1972년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우천리는 완전히 수몰되고, 1973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퇴촌면의 3개리가 남종면으로 편입되면서 현재의 수청리(대수청, 소수청이 합침), 검천리(검단리, 사천리가 합침), 귀여리, 분원리, 삼성리, 이석리, 금사리 등 7개리로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렀다. 예로부터 남종면은 남한강변에 위치하여 마을을 형성하고 살아왔음을 유적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짐작 할 수 있다.
팔당호와 직접 닿아 있는 관계로 철저하게 개발이 제한되어 있어,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되어 오고 있는 고장이다.

조선백자와 남종면 분원

朝鮮時代의 남종면은 사옹원(司饔院)의 분원이 있던 곳으로서 王室에서 사용하는 백자(白磁)와 분청사기(粉靑沙器), 청화백자 등을 생산하는 곳으로 되어 있었다.
관영(官營)으로 운영되던 이곳은 고려사열전(高麗史列傳) 과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등에는 조준(趙浚)(1346 - 1405)의 건의내용에 ‘사옹원에서 매년 사람을 각도(各道)에 보내어 왕실에서 쓰는 어용자기(御用瓷器)를 감조(監造)한다. 그러나 私利를 취한 자가 많아서 왕도(王都)까지 와서 진헌(進獻)하는 수량은 대폭 줄어져서 그 폐단이 크다’고 한 것을 보면, 이 기록은 고려말 공양왕때의 기록이므로 고려시대에 이미 사옹원에서 왕실용 어기번조(御器燔造)를 소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朝鮮王朝는 高麗王朝에 이어 太祖 元年(1392)에 사선서(司膳署)를 설치하였으며, 바로 이것을 사옹방으로 개칭하였고, 世祖 13년(1467)에 사옹원(司饔院)으로 다시 개칭(改稱)하고 조선조(朝鮮朝) 말까지 존속하였다. 분원사기(分院沙器)라고 칭하는 도자기는 옛날 남종면 분원리에서 만든 것으로서 백자(白磁), 염부(染付)와 유리유(琉璃釉), 진사(辰砂), 염부와 철사(鐵砂). 진산의 삼채(三彩)등 여러 종류의 자기(瓷器)가 생산되었다. 어용(御用)의 자기(瓷器)가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품질이 좋은 것인데, 그러한 그릇을 굽는 곳을 번조소(燔造所)라고 하
였다. 남한지(南漢志)에서도 ‘本州의 物産을 살펴보면, 매년 春秋로 사옹원 관원이 어용자기(御用瓷器)의 제조를 감독한다고 기록 되어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서 자기번조에 종사하던 사기장(沙器匠)은 380명 정도나 되며, 이들 匠人들은 瓷器 제조를 위하여 分院里 주위에 따로 1개 村落을 형성하여 살고 있었고, 이들에게 딸린 권속(眷屬)과 기타 인구를 합치면, 1,000여명이 하나의 촌락에서 생활했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사옹원의 사기
장들은 다른 업종(業種)에 종사하지 않고 그 업을 세전(世傳)하게 되어 있었다.
분원의 사기(沙器)는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상인(商人)들의 자본이 개입되었으며, 19세기에 이르러서는 그 규모가 점차 증대되어 조선조말(朝鮮朝末)인 高宗21년(1884)에 결국 商業資本家에 의하여 民營化 되면서 상옹원의 분원은 문을 닫게 되었다.
지금의 분원초등학교 자리에서 많은 朝鮮白磁가 발견되어 조선백자도요지가 史蹟 제314호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남종면에는 분원리 뿐만 아니라 금사리, 귀여리, 삼성리 등지에서도 많은 백자 遺物이 출토되어 조선백자 생산의 본거지임을 확인 할 수가 있다.
분원초등학교 교정(校庭)에는 조선시대의 사옹원 제조(提調)들의 선정비(善政碑)가 많이 있다.

남종면의 선현(先賢)들

남종면에는 많은 선현들의 묘소(墓所)가 있다.
검천리 산92에는 朝鮮 太宗代의 武臣으로 佐命功臣인 정양공(靖襄公) 심구령의(沈龜齡) 묘가 있고, 검천리산 31에는 朝鮮 肅宗代의 文臣으로 慶尙右道 암행어사(暗行御史)를 한 여광주(呂光周)의 묘가 있고, 귀여리산 75에는 朝鮮 肅宗代의 文臣으로 增廣文科에 장원급제하여 右議政을 역임한 문충공(文忠公) 김석주(金錫胄)의 묘가 있으며, 삼성리산 42에는 朝鮮 世宗代의 文臣으로 刑曹와 吏曹判書를 역임한 文景公 權軫의 묘와 삼성리산 60에는 世宗代의 문신이고 영의정을 지낸 노사신(盧思愼)의 아버지이며, 世宗의 妹夫인 돈령부사(敦寧府使)를 역임하고 領議政에 追贈된 노물재(盧物載)의 묘가 있다. 삼성리산 48에도 世宗代의 文臣이고, 世宗大王의 따님인 정의공주(貞懿公主)를 며느리로 맞았고, 함흥부윤을 역임하였으며, 右議政에 추증
된 안망지(安望之)의 묘가 있다. 수청리산 101에는 肅宗代의 文臣으로 文科에 壯元及第하고 관직이 領議政까지 오른 여성재(呂聖齋)의 묘가 있으며, 같은 장소에 光海君代의 문신으로 兵曹參判을 역임한 여유길(呂裕吉)의 묘가 있고, 孝宗代의 문신이며, 性理學의 大家이며 天文學에도 밝았던 工曹參判을 역임한 여이징(呂爾徵)의 묘가 있다.

남종면의 행정

남종면은 朝鮮朝에 양근군(楊根郡)에 속하였다가 양근군이 양평군(楊平郡)이 되어, 8개 洞里로 이루어졌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廣州郡 남종면이 되었고, 面事務所는 분원리에 소재하고 있다. 현재는 12개 行政里와 21개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南漢江에 연해 있어서, 예전에는 內陸水路를 이용한 물자의 수송이 활발하여 분원리는 廣州에서도 商業과 物流업이 융성하였던 고을이었다. 1960년대까지 분원리에 5일장이 열리고 있었다. 따라서 비교적 작은 고을이었으나 地方財政은 어렵지 않았고, 살기 좋은 고장으로 손꼽혔다. 현재는 廣州市에서 가장 面勢가 약한 곳으로 전락 하였는데, 그 이유는 面 전체가 개발제한구역이고 팔당상수원 보호구역 1권역이기 때문에 농업 이외에는 다른 산업이 이루어 질수 없기 때문이다. 面所在地인 분원리를 제외하면, 전부 농촌 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최근에는 朝鮮白磁陶窯地인 분원초등학교의 舊校舍를 재 보수하여 京畿道와 경기관광공사가 ‘분원백자관’을 설립하여 개관하였다. 이는 조선백자의 本山地인 분원을 觀光資源化하고, 맥이 끊긴 왕실도자기의 역사를 내외 관광객이 와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산업으로는 농업이 위주인데, 특히 淸淨地域에서 환경 유기농법으로 생산하는 남종면의 농산물은 도시민들에게서 크게 환영받고 있다.
行政當局은 분원리가 팔당호에서 잡히는 자연산 붕어를 가지고 “붕어찜” 요리를 개발하여 분원리가 붕어찜 마을로 全國的으로 유명해 짐에 따라 해마다 “붕어찜축제”를 擧市的으로 개최하고 있다.
또한 퇴촌면에서 308번 지방도를 따라 남종면을 관통하는 도로에 벚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식재하여, 봄에는 벚꽃길로 상춘객(賞春客)을 유치하고 있다.

출처 : makeLink("광주");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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