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선비촌 김문기가옥

浮石 2008. 11. 16. 08:00

 

 

 

 

이곳에는 일신의 안위를 구하지 않고 역사의 잘잘못을 비판한 선비의 대쪽같은 강직함을 주제로 소개하고 있다. 꾸밈없는 가옥에 들어서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앎과 삶이 일치하는 선비의 고매한 인격을 느낄 수 있다.

김문기(金文起)는 충북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 출생으로 자(字)는 여공(汝恭), 호는 백촌(白村)이며 시호는 충의(忠毅), 본관은 김녕(金寧)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효자로 이름이 났으며 성품은 강직하고 활달하였다고 전한다.

세종 8년 1426년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고 이후 예문관검열(檢閱)·정언(正言)·함길도관찰사를 역임하고 공조판서에 이르렀다.

1456년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이 주동한 단종복위(端宗復位)거사의 모의주역으로서 거사계획이 발각된 후 모진 고문 앞에서도 끝내 입을 열지 않은 죄로 사지를 찢기는 참혹한 형벌을 받았으며 아들 현석(玄錫)도 함께 처형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김문기가 모의 당시 군동원의 책임을 맡은 내용과 성삼문ㆍ박팽년에게 모의계획을 차질 없이 실행하라는 내용이 함께 기재되어 있다. 이후 영조연간에 이르러 1731년 신원이 되고 1778년에는 관직이 회복되어 좌찬성을 승직받았다.

한편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지난 1977년「조선왕조실록」에 의거하여 김문기를 세조 때 가려진 원 사육신(死六臣)이라고 판정내렸다. 김문기는 경북 김천시 지례면의 섬계서원(剡溪書院)에 배향되었으며 그의 묘는 사육신공원 묘역 우측 첫 번째에 자리하고 있으며 김씨지묘(金氏之墓)라고 씌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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