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遷葬)/임형신

浮石 2009. 4. 30. 10:57

 

 
 

천장(遷葬)

 

             

                                 임형신

1

참꽃 흐드러진 봄날

꽃산에 앉아 파묘(破墓)를 한다

뼈는 청산에 흩어지고

흙이 뼈로 서 있는 무덤 속 

주먹도끼처럼 단단한 두개골 덩그러니

빈 방을 지키고

더는 마를 수 없는 정강이 뼈

띠 뿌리가 감고 있다

직립(直立)의 위엄을 지켜주던 두 발과

견장이 빛나던 어깨는 끝내 찾을 수가 없구나

백지 위에 펼쳐 놓은 한 줌의 뼈,

청동의 투구가 된 두개골

오랜 빛이 푸르름으로 내린다

 

2

활시위보다 팽팽한 힘줄 놓아버리고

횡격막 견고한 빗장 풀어헤친날

불이었던 심장 물이 되어

하늘과 땅으로 떠도는

 

 

할아버지, 무덤 밖 산뽕나무 한 그루 키우고 있다

 

3

늙은 산뽕나무 푸르렀던 날

단잠 자고난 누에 순백의 고치집 지을 때

잉크빛 오디는 얼마나 달고 서늘했던가

잎과 껍질 뿌리째 나누어 준 산뽕나무

산허리 마른 뼈로 떠 있다

흩어진 뼈들 삼천대천세계 건너

화염산(火焰山) 한 가운데

불이 되어 내려앉고

파미르고원 목이 타는 낙타의 길에

초록비 되어 건너온다

 

불교문예 2008년 가을호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폐사지에서/임형신  (0) 2009.07.02
치자 香 /임형신  (0) 2009.06.25
방씨네 소/임형신  (0) 2009.06.24
禪林院 가는 길 /임형신  (0) 2009.06.23
석불역/임형신  (0) 2009.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