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遷葬)
임형신
1
참꽃 흐드러진 봄날
꽃산에 앉아 파묘(破墓)를 한다
뼈는 청산에 흩어지고
흙이 뼈로 서 있는 무덤 속
주먹도끼처럼 단단한 두개골 덩그러니
빈 방을 지키고
더는 마를 수 없는 정강이 뼈
띠 뿌리가 감고 있다
직립(直立)의 위엄을 지켜주던 두 발과
견장이 빛나던 어깨는 끝내 찾을 수가 없구나
백지 위에 펼쳐 놓은 한 줌의 뼈,
청동의 투구가 된 두개골
오랜 빛이 푸르름으로 내린다
2
활시위보다 팽팽한 힘줄 놓아버리고
횡격막 견고한 빗장 풀어헤친날
불이었던 심장 물이 되어
하늘과 땅으로 떠도는
地
水
火
風
할아버지, 무덤 밖 산뽕나무 한 그루 키우고 있다
3
늙은 산뽕나무 푸르렀던 날
단잠 자고난 누에 순백의 고치집 지을 때
잉크빛 오디는 얼마나 달고 서늘했던가
잎과 껍질 뿌리째 나누어 준 산뽕나무
산허리 마른 뼈로 떠 있다
흩어진 뼈들 삼천대천세계 건너
화염산(火焰山) 한 가운데
불이 되어 내려앉고
파미르고원 목이 타는 낙타의 길에
초록비 되어 건너온다
불교문예 2008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