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
유 승 도
내가 인간 세계에서 승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듯이
새의 세계에서 새들이 너를 부르는 이름을 알고 싶다
새들이 너를 부르듯 나도 너만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오래도록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을 멀리하며 나는 살아왔다
아침이야 아침이야 네가 햇살보다 먼저 찾아와 창문 앞에서
나를 불러 아침을 안겨주었듯 저기 저 산, 네가 사는 숲에 들어가
나도 너의 둥지 옆에서 너의 이름을 불러, 막 잠에서 깬
너의 눈이 나를 보는 것을 보고 싶다
그때 너는 놀라며 나의 이름을 부르겠지......승도야
그는 무작정 강원도 정선선의 종착역 구절리까지 흘러가 폐광촌 빈 사택에서 창문마다 모두 두꺼운 검은 종이를 붙여놓고 쉼없이 잠을 잤다. 스스로 세상과의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며칠이 흘러갔는지도 모르던 어느 날 바깥에서 꿈결처럼 새 소리가 들렸다. 검은 종이를 바른 후 처음으로 창문을 열었지만 새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비틀거리며 책상으로 가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의 새"가 세상밖으로 나왔다..
세상 수많은 생명과 사물들 사이에서 하나밖에 없는 이름을 서로 나직이 불러주는 위로의 의식, 그 소박하지만 힘든 의식을 거쳐 그는 다시 세상으로 나설 수 있었다. 그는 이 시편을 1995년 ‘문예중앙’ 신인상에 투고했고, 시인의 명함을 얻었다. 창작과비평사에서 첫 시집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도 펴냈다. 대학 후배인 김미숙(38)씨와 결혼도 했다. 아내의 직장이 있는 안양에 신접살림을 차렸다가 아들 현준이 백일을 맞았을 때 영월 산골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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