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의 나이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높이는 30m에 이른다. 일명 ‘인조대왕의 계마행수’라고 부른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조선시대 인조(재위 1623∼1649)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호남지방을 돌아보던 중 이곳 후산에 사는 오희도라는 분을 방문하러 왔는데, 그 때 인조가 타고 온 말을 이 은행나무에 매었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이 나무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꼽히는 명옥헌으로 들어가는 길에 하늘을 찌를 듯한 위용으로 버티고 서 있다. 은행나무 오른편으로는 오희도의 생가 터가 있으며, 뒤편으로는 노거수가 자리하고 있어 주변의 옛 영화를 다시금 생각케 한다.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의 나이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높이는 30m에 이른다. 일명 ‘인조대왕의 계마행수’라고 부른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조선시대 인조(재위 1623∼1649)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호남지방을 돌아보던 중 이곳 후산에 사는 오희도라는 분을 방문하러 왔는데, 그 때 인조가 타고 온 말을 이 은행나무에 매었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이 나무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꼽히는 명옥헌으로 들어가는 길에 하늘을 찌를 듯한 위용으로 버티고 서 있다. 은행나무 오른편으로는 오희도의 생가 터가 있으며, 뒤편으로는 노거수가 자리하고 있어 주변의 옛 영화를 다시금 생각케 한다.
이 은행나무는 키가 30m에 달하여, 확실한 나무나이는 알 수 없으나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조선(朝鮮) 인조(仁祖)가 왕위에 오르기 전 지금의 호남지방을 두루 둘러보던 중에 이곳 후산(後山)에 살고 있던 오희도(吳希道)(1583∼1623)라는 분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인조는 타고 온 말을 이 은행나무에 매었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를 일명 '인조대왕(仁祖大王)의 계마행(繫馬杏)'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