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화순항(和順港)

浮石 2017. 11. 27. 06:00


화순항(和港)은 천연의 미향()이며, 입지 여건이 뛰어나 악천후() 때는 국내외 선박들이 대피하는 피항()으로서의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제주도는 무역항으로 제주항과 서귀포항, 연안항으로 한림항·애월항·추자항·성산포항·화순항 등 5개 소를 지정하고 있는데, 그 중 화순항은 이미 조선 시대 이전부터 ‘범포()’라 하여 포구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일제 강점기인 1926년부터 ‘군대환()’이 취항하여 생계 유지로 도일()하려던 제주도민들이 많이 이용하였던 곳이다.

6·25 전쟁 때에는 모슬포에 육군 훈련소가 설치되었고, 여기에 필요한 군수 물자와 병력을 화순항을 통해 수송하였다. 해군 수송함이 산방산 동남쪽 ‘황우치 해안’에 기항하면서 이곳에 오래도록 항만 부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육지에서 밀려드는 수많은 피난민들 역시 상당수가 화순항을 통하여 들어왔다.


1956년 화순항 방파제 공사가 ‘삼건사()’에 의해 시공되어 1972년까지 방파제() 527m와 물양장() 60m가 축조되었다. 화순항은 1968년 1종 어항으로 지정되었으나 항만 개발이 보류되어 별다른 시설 확충을 하지 못하다가 1995년 화순항 방파제 실시 설계 용역을 수립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였으며, 1999년 화순항 1단계 부두 축조 실시 설계 용역이 수립되면서 안벽 축조를 시작하였다.

화순항은 1991년 연안항으로 지정된 후 2003년까지 방파제 1,006m, 물양장 및 안벽 552m 등이 축조되었다. 화순항은 한때 군항()으로 이용되었고 1만톤급 이상의 대형 선박의 입출항도 가능하여 제주도 종합 개발의 주요한 개발 대상으로, 또는 자유 무역항의 적지로 그 개발 가능성에 대하여 오랜 세월을 두고 거론되어 왔다. 화순항 개발은 미군정()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화순리 주민은 물론 제주특별자치도의 오랜 숙원 사업이다.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화순리는 한라산의 정기를 안고 서남쪽으로 줄달음쳐 뻗어 내려오면 돌오름, 영아리오름, 병악을 거쳐 논오름에 이르게 되며, 서쪽에는 산방산, 동쪽에는 월라봉, 그리고 남쪽에는 탁 트이고 광활한 태평양이 바라다 보인다. 그 산방산과 월라봉 사이에 평화롭게 형성된 마을이 화순리이다.  


화순리는 등고선 상으로 볼 때 북쪽으로 갈수록 경사가 점점 높아져 화순리 북쪽 끝단은 약 150m의 고지를 이루어, 남쪽은 낮고 북쪽은 높은 남저북고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취락이 형성된 곳은 대개 해발 10m~80m 사이이며, 그 북쪽은 잡목이 우거진 '곶'으로 되어 있다.

동서는 폭이 좁고 남북이 긴 형태로서 마을 안에는 처남동산, 신산동산, 썩은다리동산 등 크고 작은 동산이 있으며, 곳곳마다 하강물, 새물, 녹남물, 곤물, 세양물, 퍼물, 큰물, 함박이물 등 용천수가 흘러 그 주변에 취락을 형성하고 있다.

서쪽을 바라다보면 산방산의 억센 바위가 갖가지 형상을 하고 마을을 굽어보고 있으며, 동쪽에는 창고천이 고래소, 도막은소, 도채비빌레를 감돌아 흐르다 황개창이 이르러 광활한 태평양의 푸른 바다와 만난다.  


화순리 지형은 평평하지 못하고 굴곡이 심하며 곳곳에 동산을 이루고 있어 기계화가 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농사짓기나 생산된 농작물 수송이 매우 불편하였다. 그나마 해발 80m 이내의 평지를 찾아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고, 마을 북쪽에는 잡목이 우거진 '곶'과 임야로 되어 있어 옛날 사람들은 여기에 우마를 놓아기르고 또 '곶'에서는 땔감을 얻어 생활하는 지혜를 발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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