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영춘(永春)

浮石 2008. 6. 28. 08:08

 

 

 

 

 






영춘. 한자로는 永春이니까 ‘늘봄’이라는 뜻이다. 병아리처럼 샛노란 초봄에 만난 늘봄 영춘면 소재지는 한가롭다 못해 따분할 지경으로 조용했다. 낙후와 침체의 어두운 그늘이 짙어 봄의 대낮에도 거리는 쓸쓸하고 침침했다.

그러나 영춘을 에워싼 산과 강과 들은 장쾌했다. 쭉쭉 뻗은 탐스럽고 늠름한 산릉 아래로 구불구불 굽이치는 남한강. 강의 양안에서부터 저 멀리로 번져나간 풍부한 농토들.

눈에 들어오는 자연 조건의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게 없어 보였다. 강과 들이 시원스레 뻗어나가 산 속이면서도 산간답지 않게 통쾌하고 후련했다. 그래서였을까. 영춘은 사실 옛날부터 비결파(秘訣派)들이 숭배하고 사모하던 고장이었다. 정감록(鄭鑑錄)이 영춘땅을 이상적인 낙토(樂土)로 꼽은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들어 이곳에서 살림을 꾸몄다고 한다.

영춘의 산 속 여기저기에는 한때 1천여명에 이르는 화전민(火田民)들이 살아갔다. 이들의 상당수가 비결파들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영춘에는 온달(溫達)에 얽힌 지명 설화가 풍부하게 전해진다. 남한강변의 온달산성은 온달이 신라를 공략하기 위해 쌓은 성이며, 강가의 윷판바위는 온달장군이 병사들과 함께 윷을 놀았던 물건이었으며, 군간나루는 온달의 군사들이 기찰을 서던 나루였다고 한다.

꼭두방터, 은포동, 면위실, 피나위골 같은 지명 역시 온달산성 싸움과 관련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온달 설화의 사실성을 규명하기 위해 단양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학자들을 동원해 고증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다. 덕분에 온달산성이 고대국가 때 축조된 산성이라는 사실까지는 밝혀졌다고 한다. 온달은 이제 단양의 상징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영춘을 지나면서 남한강은 소백산이 흘려보낸 많은 계류들을 포섭해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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