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골산에서 놀다
임형신
젊은 날 섬으로 들어갔네 울음 우는 울둘목 건너
띄엄띄엄 분교장 품고 있는 금골산 아래
복길 씨네 주막에 짐 풀었네
땅거미 질 때까지 입품 팔고
서둘러 골방으로 돌아와 잠만 잤네
어느 날 안 보이던 산 보이고 하늘 보였네
기우는 석탑을 돌아 풀섶 헤쳐 들어가니
우물 속에 놀던
오래된 구름 한 자락 놀라 급히 달아나네
주인 기다리는 해원사(海院寺) 터 마애불 복장 속
감추어 둔 별초들의 칼 울음 울고
가느다란 햇빛 따라 석실에 드니
이주(李胄)의 쓰다만 금골산록(金骨山錄)* 한 권
버려져 있네 글자마다 뻣뻣이 고개 쳐들고 있네
바다 건너 또 한 사람 건너오네
울음 우는 명량나루 건너 유배지로 건너오네
무오년 사약 받으러 내려 간 이주와 함께 오네
영등사리 갈라지는 모세의 바닷길 따라 건너와
한 줄기 햇빛 붙들고 있는 석실에서
오늘도 해배(解配) 기다리네
금골산에서 세 사람 놀고 있네
먼저 온 나
뒤에 온 나
이주와
오늘도 금골산에서 해배 기다리네
* 김종직의 문인인 이주가 무오사화 때 진도로 유배 되어 금골산에 올라 지은 유산록(遊山錄)으로 동문선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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