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詩

환갑집에서

浮石 2005. 12. 19. 20:50

 

 

환갑집에서 부른 노래 한 편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어느 곳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겨온다. 지짐이를 붙이는 냄새 같기도 하고, 기름에 무엇을 튀겨내는 냄새 같기도 하다. 며칠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입에 담아보지 못한 그의 입가에는 어느새 군침이 고이고, 코까지 벌름댄다.

  ‘모처럼 포식을 하게 생겼군.’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냄새가 나는 쪽을 향해 바삐 걸음을 옮긴다.

  햇볕을 가리느라 그런지 사내의 머리에는 커다란 삿갓이 놓여있다. 오랜 세월을 밖으로만 떠돌았는지, 삿갓 속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사내의 얼굴에는 꺼칠한 기색이 완연하다.

  잠시 후, 사내가 도착한 곳에는 커다란 차일이 쳐있고, 손님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마당 귀퉁이, 안채로 통하는 곳에는 음식상을 나르느라 시끌벅적하고, 풍악소리까지 울려대는 바람에 그야말로 잔치집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중이다.

  ‘허, 이거 오늘이야말로 포식을 할 운수로군.’

  삿갓을 쓴 사내는 허흠허흠 헛기침을 해대며 마당으로 슬며시 들어선다. 그러나 누구 하나 거들떠 보는 사람이 없다.

  ‘아, 이거 봐라.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렇지 어디 앉으라는 사람 하나 없어.’

  사내는 두릿두릿 사방을 살핀다. 그 때 마침 풍악 소리가 멈추더니 대청마루에 앉은 귀빈인듯한 사람들이 풍월이 어쩌구 하며 수런거린다.

  ‘옳지, 저 친구들이 시를 지으려는 수작인가본데, 어디 슬슬 끼어들어볼까.’

  사내는 대청마루 가까이로 슬슴슬금 다가선다. 그 사이 대청위의 사람들은 어느새 시를 지었는지 읊기도 하고, 무릎을 치며 감상을 하기도 한다. 마루 밑에 다가선 사내는 그들이 읊는 시를 듣고는 ‘어허’, ‘허, 좋군’, ‘글쎄’하며 한마디씩 토를 단다.

  웬 낡아빠진 옷을 걸친, 게다가 어울리지 않게 삿갓까지 쓴 사내가 자기들의 풍월놀이에 끼어들자 그들은 불쾌한 기색이 연연하다. 그 집 아들들은 사내를 내쫒기 위해 팔을 걷어부치기까지 한다.

  그때, 한 선비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꺼낸다.

  “허허. 저 거렁뱅이도 보자 하니 문자속 꽤나 익힌 것 같소. 마침 오늘이 이 집 주인어른 회갑날이고 하니 저 비렁뱅이에게도 우리 시를 한 수 지을 기회를 줍시다. 잘 지으면 한 상 거나하게 차려주기로 하고 말입니다.”

  선비의 제안에 몇몇이 찬동을 한다.

  “그럽시다.”

  “별 들을만한 구석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한 수 짓게 해보지요.”

  “언문 풍월이나마 제대로 하겠는지 원. 어디 들어보기나 하지요.”

  그들의 제안에 사내는 냉큼 대청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걸치고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더니 보기보다 청아한 목소리로 시를 풀어낸다.

 

  “彼坐老人不似人(저기 앉는 저 노인 사람같지 않구나)”

 

  그가 가리킨 곳에는 환갑을 맞은 노인이 의젓한 자세로 앉아있다.

  “저, 저런.”

  “고얀놈 같으니라구.”

  사람들이 부르르 또 팔을 걷어부친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렇지, 환갑집에 와서 주인공에게 사람같지 않다니 정말 불학무식한 놈이로군, 그런 생각이 든 때문이다.

  그러나 사내는 사람들이 그러건 말건 느긋하게 다음 구절을 읊어낸다.

 

  “何日何時降神仙(어느 날 어느 때 신선께서 내려오셨나)”

 

  막 사내를 치도곤하려던 사람들이 그만 움찔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사람같지 않다고 한 말이 곧 신선이 내려온 것이라는 말로 이어졌으니, 그들이 오해를 한 것이 틀림 없었기 때문이다.

  “허허.”

  “거 참 제법일세.”

  사람들의 감탄이 이어지는데 사내는 그러거나 말거나 또 다음 구절을 턱 덧붙인다.

 

  “膝下七子皆盜賊(슬하에 둔 일곱 아들이 다 도둑놈이구나)”

 

  이번에는 주인영감의 좌우에 앉아있던 일곱명의 아들들 얼굴이 울그락푸르락이다. 자신들을 다 도둑놈이라니 그럴 밖에. 그 중에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사내를 노려보는 자식도 있다.

  허나 사내는 별 동요 없이 또 다음 구절을 읊어댄다.

 

 “取天桃善奉養(하늘의 복숭아를 훔쳐 아버님을 잘  봉양하였구나)”

 

  마침 주인영감의 앞자리에 놓인 상에는 먹음직스러운 복숭아가 가득 담겨있었으니 딱 들어맞는 시였다.

  그제야 사내의 시짓는 솜씨가 보통이 아님을 깨달은 사람들이 그를 다투어 불러올려 거나하게 대접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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