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강가에 / 임형신 다시 강가에 임형신 나무들의 귀를 빌려 듣는다 그날의 물소리를 나무들의 혀를 빌려 맛본다 그날의 바람을 나무들의 말을 찾아 미루나무 숲이 있는 강가로 가면 수천의 귀를 열고 기다리는 나무들 천수천안의 손을 흔든다 한그루 나무가 되고 싶어 나무들의 영토에 편입 된 날 나무들은.. 詩 2012.08.15
산염불/임형신 산염불 임형신 화악산 기슭에는 황금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개가 일모(一毛) 시인과 함께 산다 철 지난 물가에서 놀던 개가 물어온 번쩍이는 목걸이는 개의 목에 채워주고 돌아앉아 시인은 매일같이 화선지에 발자국을 찍고 있다 눈밭에 찍힌 참새 발자국부터 소백산에 두고 온 자신의 .. 詩 2011.11.26
우리 지금은/임형신 우리 지금은 임형신 할 말이 있어요 우리 첨 만났던 강가로 가요 우리가 만났던 날은 산벚나무 손을 맞잡고 향기를 서로에게 나누어 주던 봄의 한 가운데 우리는 모든 것을 안아주는 물 이었다 지금은 바람 부는 때 언제부턴가 우리는 쇠가 되어 조금씩 서로를 깎고 있었다 아물지 않은 .. 詩 2011.11.25
연혁(沿革) / 임형신 영월 선유사 연혁(沿革) / 임형신 '먹을 것이 없어 갑니다' 라고 벽에 써놓고 갔다 법화종 젊은 스님은 누군가 밑둥의 껍질을 벗겨간 후 절 마당가에 있는 옻나무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뒷방에서 겨울을 난 처사가 봄 되자마자 산의 정수리로 올라가 목매 죽은 뒤로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 詩 2011.11.24
장회나루 장회나루 이승복 여보시게 금강산을 가보셨는가 신선이 산다는 금강산을 혹 못가 보셨다면 충청북도 동쪽 끝자락 단양팔경 장회나루를 와보시구려 여기도 신선이 사는 신선봉 있고 계림을 옮겨놓은 구담봉 있고 옛 조선팔도 풍류객들 시를 읊은 절경과 올곳은 퇴계까지 한눈판 단양여인 전설도 있다.. 詩 2011.10.17
한권의 책/임형신 흥교사지 한권의 책 / 임형신 만권의 책 채석강 바람 속에 묻어두고 동강 가에 와서 또 한권의 책 집어 든다 강 마을에 와 사공으로 주저앉은 떠돌이 중 이해수씨, 어라연 물길 오가며 한 소식 기 다린지 오래다 그의 깊게 파인 주름의 행간마다 촘촘이 새긴 문장 한 올씩 풀어내 어 한나절.. 詩 2011.10.06
아버지의 산/임형신 아버지의 산 / 임형신 새터로 이사 온 날 아버지는 앞산을 가리키며 "저기 산이 안 있느냐"시는데 여남 살 먹은 나는 그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 살아오다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야 알아듣 고 기억속의 산 하나 복원해낸다 눈에 갇혀 있는 노령(蘆嶺)의 국망봉 아래, 해묵은 할머니 기침소.. 詩 2011.09.20
쑥의뼈/임형신 쑥의뼈 임형신 낮은 자리마다 쑥이 자란다 지상에 흩어진 뼈들이 자라 약쑥을 키운다 내려앉은 봉분 위로 물쑥 한 다발 밀어 올린다 창생(蒼生)의 뼈들 쑥뿌리로 살아남아 촉촉이 젖은 다북쑥 키우고 있다 뼈마디 마디가 애쑥의 쑥대로 자라고 있다 갓 시집온 아낙이 물쑥 한바구니 이고 .. 詩 2011.05.31
산마을엔 보름달이 뜨잖니/유승도 산마을엔 보름달이 뜨잖니 유승도 봐라, 저 달 표면을 기어가는 가재가 보이잖니? 빛이 맑으니 구름도 슬슬 비켜가잖니 가볍게 가볍게 떠오르잖니 저기 어디 탐욕이 서려 있고, 피가 흐르고 있니? 그저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산천을 끌어안잖니 詩 2011.01.27
돼지 잡은 날 / 유승도 돼지 잡은 날 유 승 도 고기를 씹으면 피비린내가 뇌로 퍼진다 내가 내려친 도 끼머리에 머리를 맞고 쓰러지는 돼지, 칼로 멱을 찌르니 콸콸 쏟아지는 피, 그 피가 내 머리뼈 밖으로 흘러내린다 푸푸 머리와 몸통 사이, 끊어진 기도를 통해 세상을 향 해 토해내는 돼지의 거친 숨이 내 가슴.. 詩 2010.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