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사/임형신 미모사 임형신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는 날에 잎이 돋는다 이 빠진 항아리들이 견디는 세월 곁에 미모사 새움 돋는다 작은 바람에도 크게 흔들이는 엷은 미모사 흐린 날에는 울음이 잎으로 베어난다 혼자 자주 놀라는 미모사와 함께 흔들이는 절망의 가지 끝에서 또 다른 절망에 익숙해.. 詩 2013.12.12
유형지에 두고 온 귀/임형신 유형지에 두고 온 귀 임 형 신 폭포는 내전 중이다 소리에 쫓긴 귀가 운봉 아흔 아홉 배미 돌아 금원 폭포 아래 서다 득음을 꿈꾸다 버리고 간 귀들 쌓여있는 폭포는, 본디 소리를 지키려 안간힘이다 세상 뭇 소리를 삼킨 폭포가 소화불량증을 앓고 있다 유형지를 떠돌던 소리들 달려들어 .. 詩 2013.12.10
밥냄새/오탁번 밥냄새 1 오 탁 번 하루 걸러 어머니는 나를 업고 이웃 진외가 집으로 갔다 지나다가 그냥 들른 것처럼 어머니는 금세 도로 나오려고 했다 대문을 들어설 때부터 풍겨오는 맛있는 밥냄새를 맡고 내가 어머니의 등에서 울며 보채면 장지문을 열고 진외당숙모가 말했다 - 언놈이 밥 먹이고.. 詩 2013.09.21
저녁 연기 같은 것 - 오탁번 저녁 연기 같은 것 - 오탁번 시는 저녁연기 같은 것이다 가난 하지만 평화로운 마을,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가 바로 시다 해가 지는 것도 모른 채 들에서 뛰어 놀다가 터무니없이 기다랗게 쓰러져 있는 내 그림자에 놀라 고개를 들면 보이던 어머니의 손짓 같은 연기 하늘.. 詩 2013.09.20
소/권정생 소·1 권정생 보리짚 깔고 보리짚 덮고 보리처럼 잠을 잔다. 눈 꼭 감고 귀 오구리고 코로 숨쉬고 엄마 꿈꾼다. 아버지 꿈꾼다. 커다란 몸뚱이, 굵다란 네 다리. - 아버지, 내 어깨가 이만치 튼튼해요. 가슴 쫙 펴고 자랑하고 싶은데 그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소는 보리짚 속에서 잠.. 詩 2013.08.21
인연설/한용운 함께 있을 수 없음을 슬퍼하지 말고 잠시라도 곁에 있을 수 있음을 기뻐하고 다 좋아해 주지 않음을 노여워 말고 이 만큼 좋아해 주는것에 만족하고 나만 애태운다고 원망하지 말고 애처롭기마저한 사랑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에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었음을 .. 詩 2013.03.18
가을은 / 임형신 가을은 임형신 가는 귀 먹은 방씨 할아버지네 마당 어치 등에서 놀고 있다 집총 거부하다 옥살이 하고 나온 안식일교도의 아가서 위에 오래오래 엎드려 있다 깨어진 블록 담 틈새에 핀 깨꽃의 얼굴에서 땀 훔치고 있다 건초더미를 씹고 있는 염소 뿔에 가을은 걸려있다 뿔에 받힌 안개가 .. 詩 2012.11.08
서강에 다녀오다 / 임형신 서강에 다녀오다 임형신 소나기재 베고 누워 있는 장릉 지나 서강에 이르다 물이 불어 오늘 배 못 뜬다네 적소가 보이는 주막거리에 주저앉아 강울음 소리 들으며 술을 마신다 여름의 분탕질은 끝났다 하늘을 찢어버리고 서강에 내려온 원호(元昊),* 강의 역사 다시 쓰고 있다 생을 찢어.. 詩 2012.11.06
금골산에서 놀다 / 임형신 금골산에서 놀다 임형신 젊은 날 섬으로 들어갔네 울음 우는 울둘목 건너 띄엄띄엄 분교장 품고 있는 금골산 아래 복길 씨네 주막에 짐 풀었네 땅거미 질 때까지 입품 팔고 서둘러 골방으로 돌아와 잠만 잤네 어느 날 안 보이던 산 보이고 하늘 보였네 기우는 석탑을 돌아 풀섶 헤쳐 들어.. 詩 2012.08.31
달이 오르면 /임형신 달이 오르면 임형신 먼 강물소리 환청에 귀를 세우던 나무들 달 오르자 마디마디 막혔던 물길 흐르고 불볕 아래 소신공양을 끝낸 민달팽이 화상 입은 발 서늘한 달빛에 담그고 있다 지금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시간 무병(巫病)을 앓는 나무들 달 하나씩 손에 쥐고 강신무를 추고 있다 푸.. 詩 2012.08.17